금오산에서 일생을 마치려 했으나 7년쯤 살고는 떠났다. 수락산에서 여생을 보내려 했지만 10년만에 집을 비웠다. 1483년 3월 19일, 김시습은 책보따리를 싣고 관동으로 방향을 잡았다. 농사지어 먹고 살기 마땅한 곳이 있으면 생계를 꾸릴 작정이었다. 이번에도 돌아올 마음은 없었다. 남효온(1454~1492)은 술병을 들고 따라가 전송하는데, 손을 잡고 오열했다. 앞으로 다시 볼 기약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때 김시습은 49세, 남효온은 30세였다.
남효온, 추강집 권 1, 癸卯(1483. 49세)三月十九日 送東峯悅卿歸關東 悅卿載六經子史 涉關東山水 求得黍地 資耕力以活 無復還鄕之意 余持薄酒 握手嗚嗚 以爲千里無相見期之別
許由入箕山, 淸名與世隔. 非薄帝堯德, 偏成山水癖. 況當聖明時, 不喜風漢客. 行藏有定命, 得失何戚戚. 終風十二街, 莫非狐兔跡. 人寰世味飫, 關東山水僻. 山峻秀長松, 水淺擊小石. 千秋令名昭, 事與雲水白. 我來資薄酒, 談話供燈夕. 刺刺不能別, 有懷何由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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