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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경이

검하객 2015. 5. 20. 10:14

  밤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아 설쳤는데, 딸아이가 일찍 나간다가 부산대는 통에 6시에 일어났다. 하얀 실루엣의 여인이 밖에서 눈짓을 보냈다. 안개숲, 경이는 우리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지리산 연봉인들 이보다 더 아름다우랴! 김성탄의 말은 이를 가리킨다.

  

               

 

    선유자(善游者)에게는 세상에 동천복지(洞天福地) 아닌 곳이 없다

(무림고수의 부러진 창자루, 대목수의 자투리 나무조각, 이중섭의 담배곽 은박지)

 

나는 이로써 기묘함의 근거는 진실로 비어있는 곳(또는 평범한 곳)에 있음을 알았다. 평범한 곳에는 큰 산이나 재, 절벽이나 시내, 언덕이나 다리 놓인 골짜기도 없다. 하지만 그곳에 이르면 내 가슴속의 한 자락 별재(別才)가 나래를 펴고 눈썹 아래 한 쌍의 별안(別眼)이 동탕한다. 내 가슴속에 별재가 있고 눈썹 아래 별안이 있지만, 이는 모두 평범한 곳에서 나래를 펴고 동탕질한다. 그렇다면 내 어찌 꼭 동천 복지에 갈 필요가 있으랴.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동천을 떠나 다음 복지에 이르기 사이 중간 2,30리나, 적으면 1리 반 사이 어느 곳인들 나의 별재가 나래를 펴고 별안이 동탕하는 곳이 아니겠는가. 한줄기 작은 외나무 다리, 한 그루 가지가 갈라진 나, 한 개울과 한 마을, 울타리 하나와 개 한 마리를 대하고도 나의 별재(別才)는 나래를 펴고 별안(別眼)이 동탕한다. 그렇다면 동천 복지의 기기묘묘한 풍광은 과연 저기 있는 것이냐 아니면 여기 있는 것이냐? (김성탄, <서상기> 평어)

 

하찮은 것들이 모이면 천하의 보물이 된다

 

이런 마음으로 살펴 가면, 시골에서 장 담은 항아리를 보내주는 한 마디 말, 남의 집 시어머니 며느리가 다투는 말, 길에서 사람이 읍하며 이별하는 모습을 묘사해도 반드시 문장의 운치가 있게 마련이다. 길가에서 사탕 부스러기 하나를 주워도 하나하나 항아리에 넣어서 그게 가득해진다면, 천하의 어떤 주제나 제목이 압박해 와도 두려울 것이 없다. (김성탄, <서상기> 평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