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무념무상으로 한해를 보내다

검하객 2016. 1. 1. 11:28

 잠이 부족해 눈가가 무거운 줄 알았더니 눈꺼풀에 피가 몰려 나타난 현상이었다. 인간이 만든 시간의 경계를 지나며, 그 경계를 지워버리기로 했다. 경계는 불필요한 심리를 만들어낸다. 반성, 다짐, 불안, 공포, 후회 등등. 그저 추억에 잠기기로 했다. 나는 550년 전에 경주 금오산에 살았고, 어느 해 겨울엔가 그로부터 몇해 전 여행했던 곳들에서 겪었던 일들을 글로 옮겼다. 나는 그때 겨우 서른두어 살이었고, 내가 겪은 일들은 스물대여섯 살 무렵에 겪은 것이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고, 겪고 나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 잔상들이 좀처럼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러 날 밤을 지새며 지은 글들이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잊었는데, 어떻게 된 경위인지 지금은 그게 꽤나 유명한 이야기가 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 글을 한국 최초의 소설이라고 하고, 거기서 방황했던 내 청춘을 읽어내려고도 한다. 우스운 일이다. 내가 도대체 뭐라고 썼던 것일까? 만복사저포기? 오 그래, 스물 몇 살 때인가 늦가을 저녁 남원에서 팔량치를 넘어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早喪父母, 未有妻室" 그래, 이렇게 썼구나. 난 어머니의 죽음 이후 고아의식에 사로잡혔고, 이 때문에 결혼 생활도 정상적으로 해나가지 못했지. 겨우 세 구절을 읽고 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550년의 세월이 사라진다. 몸이 변하는 게 느껴진다. 난 오늘 반가사유미륵보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