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소설과 속도와 정보

검하객 2016. 1. 12. 00:06

 안동 가는 버스 안, 이 차의 속도는 최소 시속 100km이다. 환산하면 6분에 10km 25리이고, 60초에 1km이다. 골을 잇고 산을 뚫어 낸 길 옆의 물상들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잠시도 나를 위해 머물러주지 않고, 나 또한 이 차를 세울 수 없다. 나와 세상 사이에는 어떤 풍경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테스"가 나온 해는 1891년, 주인공은 주로 걸어서 마을과 마을 사이를 걸어서 이동한다. 결혼 사흘만에 남편과 헤어지고 플린트쿰애 농장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테스는 어느 일요일 새벽 일루의 희망을 품고 시아버지가 있는 에민스터에 갔는데, 그 거리가 25km나 된다. 테스는 시아버지는 만나지 못한 채 설움과 절망에 휩싸여 돌아온다. 이날 그녀는 왕복 50km를 걸었다. 그들은 저 산 밖에 어떤 세상이 있고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지구가 도는 속도로 살아간다. 작가에게는 종이와 펜이 있었다. 소설은 이러한 시대의 산물이자, 그 속도에 맞는 장르이다. 우리에게는 정보가 너무 많다. 책은 지천이고, 영상은 사태가 났으며, 인터넷은 해일이다. 사람들이 정보를 만들어내고 이용한다기보다는, 우리는 정보의 바다 속에 사는 물고기이다. 글도 너무 빨리 그리고 많이 만들어진다. 펜과 종이 사이에서 지어지는 손의 감각을 우리는 잃었다. 글은 생각과 손의 감각을 계속 추월한다. 아무래도 소설의 시대는 아닌 것이다. 우리는 왜 소설을 읽고 있는가? 옛날 그 소설들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지? 소설은 살아남을까? 이런 질문부터 던져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