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이 사람, 鶴野散人 임문성
검하객
2016. 1. 24. 11:05
645년 당나라 원정군에 제일 먼저 함락된 백암성 아래 이르자 우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박씨 형제 집으로 들어가 큰 소리로 수작을 나누었다. 캉이 있는 작은 집이 일순 떠들석했고 여행자 8명은 그 주변을 맴돌았다. 朴은 중국에는 없는 한국의 성씨이다. 요양에서 태자하를 건너 영수사에 이르기까지 그는 5번이나 東京城陵 부근의 朴家堡를 가보자고 했다. 밖의 기온은 영하 15도인지라, 골목에 다니는 사람도 없을 텐데. 박가보는 병자호란 즈음 끌려온 유민 후예들의 집성촌으로, 백암성 박씨 형제의 고향이기도 하다. 너무 춥다고 엄살을 피우자, 그는 그럼 다음에나 가자고 심상하게 말했다."패전한 일본은 만주의 자국민들을 포기했습니다. 살기 위해 어린 자녀를 중국인 가정에 맡기고 떠난 일본인들이 많았어요. 뒷날 그 자녀들이 일본에 돌아갔지만, 일본어도 못하죠, 사회의 문제아들이 된 거에요." 심양 북쪽 9.18기념관의 몇몇 사진을 설명할 때, 그는 습관적으로 안경을 만졌는데, 순간 경상도 억양이 더욱 억세지고 동공이 부풀었다. 그날 밤 柏晶賓館 앞에서 나는 혹한 속에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등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그는 남고 우리는 돌아왔다. 그의 이름은 임문성, 할아버지가 영천 출신인 이주민 3세 조선인 가이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