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단강 편지

윤리적 질문의 변화

검하객 2016. 5. 10. 16:37

  목단강에 와서 여러 경로로 몇 편의 드라마를 보았다. <미세스캅 2>, <기억>의 15,6회, 그리고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13회부턴가 보고 있다. 이러한 드라마 경향은 여기 오기 전에 보던, <내부자들>(영화), <어셈블리>, <리멤버>, <시그널> 등과 연속선상에 있다. 나는 언제부턴가 거대 악에 도전하는 작은 정의의 서사에 탐닉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이야기에서 악은 기업, 검찰, 정치인의 유착 속에서 행해지고 은폐된다. 그 과정에서 약자가 희생양이 된다. 이야기는 한결같이 구조적 폭력, 초(합)법적 범죄를 겨냥하고 있다. 약한 정의는 좌절하고 실패하면서도 끝내는 저 거대한 구조적 폭력과 합법적 범죄의 일단을 징벌한다. 40년 전 유행했던 <수사반장>이나 <전우>, <수사본부> 등의 드라마에서는 선악의 구도가 명료했다. 경찰/범인, 간첩이나 국군/인민군 등으로 말이다. 이 구도의 후자였던 가시적 폭력의 흉악범 또는 적군은, 이제 구조적 합법적 폭력의 사회 유력 인사를 바뀐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근저에는 평등과 공정으로 포장된 사회 속에서 엄존하는 신계급의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비판의식이 깔려있는 것도 사실이다.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나는 또 옛날처럼 그저 징벌의 서사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분법의 대결구도를 훨씬 뛰어넘는 세련된 인식과 구조에 탐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드라마들의 잇단 등장은, 우리 사회의 인식과 도덕의 수준을 높여줄 것인가? 아니면 그저 도덕적 자위, 또는 소비적 해소에 머무는 것은 아닌가? 이런 이야기들이 방영되고 수용되는 것을 봐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판에 관대하고 국민들의 수준이 높은가?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는 증거이다. 나는, 시청자들은 혹 이런 생각에 젖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자기 만족감?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걸 내가 어쩔 것인가? 그럼에도 나는 의식이 깨어있다. 나는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중문화의 달콤한 수용과 자기만족적 타협과 절충? 이러한 대중문화가 혹 불공정 사회의 유지와 강화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닌가? 대중문화 또한 대자본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반대로 대자본의 형성을 도와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