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기의 어려움 (11.16)
지금 이 방에는 어학 교재를 제외하면,
<秋笳集>(吳兆騫), <창조적 작가와 몽상>(프로이트), <괴테와의 대화 1>(요한 페터 에커만), <古今笑>(馮夢龍), <수호지 4> (삼성출판사), <사기열전 하> (을유문화사), <中國文字獄>, <三劍樓隨筆>, <고리오 영감> (발자크)
가 전부이다. <고리오 영감>은 여기서 완독한 유일한 책이다. <추가집>은 논문을 위한 텍스트이고, <사기열전>과 <삼검루수필>은 번역을 위한 텍스트이니 독서용은 아닌 셈이다. <고금소>는 아마 꽂혀만 있다가 갈 것이다. <중국문자옥>은 논문에 도움이 될까 샀는데, 별 필요가 없다. 역시 책꽃이를 장식할 뿐이다. 그나마 읽을 거리로 남는 책은 <창조적 작가와 몽상>, <괴테와의 대화 1> 뿐이다. 단촐하니 좋기도 하고, 몇 권 더 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 남은 한달 여 동안에는 프로이트만 조금 더 읽게 되지 않을까.
어제 자기 전에 프로이트의 <괴테의 '시와 진실'에 나타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읽었다. 분량도 15쪽밖에 안 되고, 그의 글이 대개 어렵지 않다. 글은 괴테의 자서전에 그려진 유년기(4살 이전)의 기억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씌어진 것이다. 별 의미 없어보이는 괴테의 기억 - 집안의 접시를 밖으로 내던져 깼다는 - 은, 프로이트의 가설에 비슷한 사례들이 하나 둘씩 모임으로써 어떤 의미를 지닌 것으로 추론된다. 그 과정에서 괴테의 유년기 가족사가 고려되었다. 임상 전문가답게 프로이트는 사례와 사실들을 툭툭 던지고, 나중에는 이것들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낸다.
어떤 일이든 숙련된 사람 - 고수 또는 마스터 - 은 힘을 빼고 모을 줄 안다. 무슨 일을 처음 배울 때는 거의 예외 없이 힘 빼는 방법부터 배운다. 몸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서, 목적으로 하는 대상에 경제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건 순전히 '에너지 사용의 경제성'의 문제이다. 논문 쓰기 또한 그렇다. 힘은 잔뜩 들어가 있어 대단한 글인 것처럼 보이지만 읽어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게 있고, 허술하고 가뿐하여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읽어보면 눈이 번쩍 뜨이는 것도 있다. 후자와 같은 글을 써야 좋겠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의 것 같은 글들만 세상에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