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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멸망 (11. 27)
검하객
2016. 12. 23. 13:56
926년 12월, 혹한 속에서 大遼國 황제 耶律阿保機는 발해 정벌에 나선다. 가족들을 대동했다. 떠나기 전 후당에 사신을 보내 국교를 다져놓고, 나선 뒤에도 선물과 함께 사신을 보냄. 926년 1월 3일(양력 2월 17일) 渤海 扶餘府 를 포위했다, 사흘 만에 함락시키고 곧장 발해 상경 용천부로 진격하여 9일 忽汗城 을 포위했다, 사흘 만인 1월 12일 발해 왕 大諲譔 신료 300명과 함께 素服 입고 素幡 들고 양을 끌며 투항했다. 예우하여 돌려보냈으나, 14일 무기를 수거하는 과정에서 분격을 참지 못한 발해 병사들이 거란군 살해했다. 20일 다시 무력으로 발해군의 저항을 진압했다. 2월 5일, 青牛와 白马를 잡아 천지에 제사지냈다. 2월 19일 새 나라의 이름을 東丹國이라 하고, 첫째 아들 耶律倍를 황위에 앉혔다. 大契丹国의 속국으로 삼은 것이다. 3월 29일 군사를 돌이켰다. 발해 국왕 부부는 臨潢府(内蒙古自治区 赤峰市 巴林左旗 林东镇)로 압송하여 살게 했다, 그들에게 자기 부부의 애마 이름인 烏魯古와 阿里只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요군이 출발한 臨潢府(内蒙古自治区 赤峰市 巴林左旗 林东镇)에서 발해 상경성 용천부 홀한성까지의 거리는 직선으로 이어도
800km에 달한다. 당시에는 도로도 거의 없었을 것이고, 때는 아직 북국의 추위가 그대로인 2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