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오사카 이카이노의 조선여인들
검하객
2017. 6. 25. 17:54
맞은편 보도를 한복차림의 할머니가 팔자걸음으로 유유히 걸어간다. 종종걸음으로 성급하게 걷는 모습은 별로 볼 수 없다. 찻길을 건너, 보도 저편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 할머니와 비슷한 흰 한복 차림이 언뜻언뜻 보였다. 의식적으로 찾으려고만 들면, 불과 10분 사이에 한복 차림의 여자들을 적어도 두세 명은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도 지금쯤 저런 모습으로 이카이노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선인촌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능 이카이노의 변두리 같은 지역에 사는 일본인이 싫어할 뿐 아니라, 이카이노에 사는 조선인 청년들도 한번은 이카이노에서의 탈출을 시도한다. 재일조선인으로서 태어난 데 대한 반발심 때문에, 그들은 이카이노를 민족차별과 치욕의 집중적인 표현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 양준오도 그런 시기를 겪었다. 그것을 극복한 뒤에 그는 열렬한 이카이노 예찬론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남승지도 그런 양준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조선의 어머니들은 - 남승지의 어머니도 그렇지만 -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그녀들은 식민지시대부터, 지금 눈앞을 걷고 있는 할머니와 똑같은 옷차림으로 말없이 거리를 걷고,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일본말로 물건을 사고, 때로는 전차나 전철을 타면서, 조선인임을 당당히 드러낸 채 살아왔던 것이다. 거기에는 남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침범하기 어려운 토착적이고 민족적인 알맹이가 있었다. (김석범 / 이호철, 김석희, 제 3책 1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