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흘러가는 삶

검하객 2017. 11. 12. 23:29

 

  가끔 방향을 틀고, 소용돌이에 돌며 머물고, 급류에 휘말리기도 하고, 돌아서 지나온 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지만,  삶은 대체로 작은 배를 탄 것처럼 강물을 타고 흘러간다. 인생의 강 위에 있는 배를 탄 이상 물결은 거역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1천 년 전이나 2천 년 전으로 가서 연구년을 보내고 싶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 시절 언어를 채록할 것이다. 노트북은 가져가봐야 소용없을 테니, 두툼한 노트 여러 권과 필기감 좋은 펜을 한 뭉치 들고 가야겠지. 하지만 배는 돌릴 수 없고, 나는 떠내려 갈 뿐이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청소하는 아주머니 두 분이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며 인사를 한다. 한 분은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한 분은 다리가 아프단다. 몹시 서운하지만,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것도 이상하고 뒷날을 기약하기도 그렇다. 우린 섭섭한 표정으로 한참을 복도에 서서 말없이 이별했다. 어제는 대전에서 魏姍과 魯唯, 그리고 宋文琦가 찾아왔다. 지난해 목단강에서 인연을 맺은 학생들인데, 충남대와 명지대에 교환학생으로 와있는 중이다. 옛 사진을 뒤적이는데 자꾸 성욱이가 나타나, 우린 잠시 목이 메인 채 잠시 서로 눈길을 외면했다.  육신을 잃은 기억들은 도처에서 수시로 출현하여 부재를 상기시키고 자취를 감춘다.

 

  어제 밤에 집에 거의 다 와 가는데, 큰길 옆에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서있는 것이 아닌가! 차가 쌩쌩 달리니 갑자기 세울 수가 없어 지나쳤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안 놓여 차를 돌려 그 자리로 갔는데, 다행히도 사라지고 없다. 가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날아갔다면 다행이다. 오늘 9시 30분은 되어서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산책에 나섰다. 경안천 가에는 억새가 반짝이고, 물 위에는 가마우지와 오리와 백로 등이 무리 지어 섰거나, 날거나, 자맥질하고 있다. 생동하는 풍경을 마주하는 것은, 신석정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의 거룩한 일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