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도스토예프스와 카프카의 벌레

검하객 2018. 2. 9. 13:00

지하생활자의 수기(1864)1인칭 서술자는, 자신은 벌레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여태까지 벌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만한 가치조차도 없는 인간이었다. 여러분, 나는 단언한다 -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것은 곧 병이라고. 병이라도 진짜 병이다. 인간의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지극히 평범한 의식만으로도 충분하다. 1/4만 있어도 충분하다. (이동현 역, 문예출판사, 10)

변신(1915)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자기도 모르게 벌레로 변해있었다.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끔찍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갑각처럼 딱딱한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있었는데, 머리를 약간 쳐드니 딱딱한 껍데기에 활처럼 줄이 간 갈색의 둥근 배가 보였다. 몸의 다른 부분에 비해 지나치게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이 눈앞에서 힘없이 버둥거리고 있었다." (김현성 역, 고려워미디어, 297)

도스토예프스키가 죽고(1881.2.9) 2년 반쯤 지나 카프카가 태어났다. (1883. 7. 3) 1864년 페테르부르그의 지하생활자가 벌레 되기를 꿈꾸었는데, 1915년 프라하(작품의 배경이 명시된 것은 아님)에서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했다. 그야말로 "익주의 소가 풀을 뜯으니, 회주의 말 배가 터진" 격이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 아무런 상관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두 사건 사이의 인과율이 성립된다면, 익주 소와 회주 말의 그것도 가능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