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하객 2018. 3. 28. 17:24

 

  김시습은 <風月樓戲題>란 시도 지었다. 풍월루의 위치는 정확하지 않은데, 대동강 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 戱題라고 했을까? 남녀의 애정을 주목했고, 그중에서도 여인의 처지와 심사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장난 삼아서? 하지만 세상 많은 일의 이치가 그렇듯이, 어깨에 힘을 빼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곤 한다. 어차피 짓기가 놀이, 유희 아니던가!

 

風月樓戲題

 

樓上玉人吹胡笳

樓下女兒頭戴花

花枝䙚䙚不勝鬟

碧雲堆上春風斜

 

樓上玉人砑硝帽

半醉打鼓舜花倒

恰似峭絶靑山峯

白雨點裏仙侶傲

 

風流未盡客將歸

抆淚相別江之隩 

欲別未別空斷腸 

白鳥去邊山蒼蒼 

 

문집에는 한 수의 형태로 놓여있지만, 운자나 내용으로 보면 원래는 세 수가 아니었던가 싶다. (의도적 換韻이 아니라면) 편의상 세 수로 나눠 보자.

첫 수에서 다락 위에 있는 옥인과 아래 있는 옥인은 뭐가 다른 걸까? 花枝와 鬟에서 어떤 게 원관념일까? 花枝가 원관념이라면 鬟은 꽃송이가 되겠고, 鬟이 원관념이라면 花枝는 여인의 갸녀린 몸매가 된다. 이는 4구의 주체, 춘풍 속에 서있는 모습이 누군인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옥인은 2명이다.

둘째 수에서 옥인은 1명뿐이다. 춤을 추고, 장구를 친다. 舜花는 무궁화의 일종이라는데, 무궁화가 피는 시절 아닌 것이 의문이다. 3,4구는 앞 시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다. 청산처럼 우뚝하고 신선처럼 의젓한 모습, 이건 아무래도 남자이다. 두 수의 내용으로 보아, 악기를 연주하고 춤 추고 노래하는 옥인은 기녀가 틀림없다. 

셋째 수에서 옥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대신 그의 처지와 심경이 노래된다. 다하지 않은 풍류란, 남녀간의 애정이다. 둘째 수에 보였던 仙侶가 떠나가니, 강가 한 구석에서 눈물을 훔치는 주체는 玉人이겠다. 몸은 헤어졌지만 마음으로 놓지 못해 애가 끊어진다. 그가 떠나간 곳, 즉 백조가 날아가버린 곳에는 산색만 푸르다.

좋다! 옥인의 심경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