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로 지리

燕나라 昭王

검하객 2018. 7. 7. 11:40

   연나라 昭王이 천하의 인재를 초빙하여 국력을 쌓고 제나라에 복수한 이야기는 "전국책"에 자세히 보인다. 사기 연세가의 관련 부분은 아래 기사를 2/5 정도(479자 -> 210자)로 축약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소왕이 곽외를 위해 궁실을 지었다고만 했다. 황금대를 쌓았다는 이야기는 5세기가 되어야 나타난다.

 

昭王은 잇단 내란과 외침으로 파탄 난 연나라를 수습하여 왕위에 올랐다. 자기를 낮추고 예물을 두터이 하여 현자를 모셨는데, 이는 앞으로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郭隈 선생을 예방하여 물었다.

제나라는 우리가 어지러움을 틈을 타 우리를 공격했습니다. 우리 연나라는 약소하여 갚아줄 힘이 부족합니다. 저는 현사를 얻어 나라를 함께 운영하여 선왕의 수치를 씻어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곽외가 대답했다.

황제는 스승과 함께 하고, 왕은 벗과 함께 하며, 패자는 신하와 함께 합니다. 하지만 나라를 망칠 군주는 머슴과 함께 하지요. 몸을 낮춰 섬기고 스승으로 삼아 배우면 자기보다 백 배 뛰어난 사람이 이릅니다. 남보다 먼저 달려가고 남들 뒤에 쉬며, 먼저 질문하고 나중에는 침묵할 줄 알면 자기보다 열 배 뛰어난 사람이 이릅니다. 남들이 달려가면 따라 달려간다면 자기 수준의 사람이 이릅니다. 궤안에 기대거나 지팡이를 짚고 비스듬히 서서 곁눈으로 보면서 부리려 하면 일꾼이 나타납니다. 눈을 부라리고 볶아치며 욕설을 해대면 머슴이 이르는 법이지요. 이것이 옛날 도로 심복시켜 인재를 이르게 하는 방법입니다. 왕께서는 널리 나라 안의 현자를 가리시어, 그 집에 인사를 가십시오. 천하에 그 소문이 나면 인재들이 다투어 연나라로 몰려올 것입니다.”

소왕이 말했다.

누구에게 인사를 가면 좋겠습니까?”

곽외가 말했다.

옛날에 천금으로 천리마를 구한 임금이 있었습니다. 3년이 지나도록 얻지를 못했는데, 한 측신이 나서 자기가 찾아보겠다고 아뢰었지요. 임금이 그를 보냈는데, 석 달만에 천리마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말은 이미 죽은지라 그 머리를 오백 금에 사와서 보고했습니다. 임금이 격노하여, 살아있는 말을 사오랬지 죽은 말 따위에 오백 금을 썼느냐며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측신은, 죽은 말도 오백 금에 사셨으니 살아있는 말을 사는 건 일도 아니라며, 천하 사람들은 왕의 의지와 능력을 믿게 되었으니 곧 천리마가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1년이 되지 않아 천리마 세 마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대왕께서 천하의 현사를 얻고자 하신다면 저로부터 시작해보십시오. 곽외 같은 인물이 존중을 받는다면, 저보다 현명한 이들이야 두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들이 천리를 멀다 할 까닭이 없지요.”

소왕은 곽외를 위해 궁궐을 짓고 스승으로 모셨다. 그러자 나라에서 樂毅, 제나라에서 鄒衍, 나라에서 劇辛이 찾아왔다. 선비들은 다투어 연나라로 몰려들었다. 소왕은 죽은 이들을 조문하고 민생을 돌보며 백성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 즉위한 지 28년이 지나자 나라 살림은 풍요로워졌고 군사들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악의를 상장군으로 삼고, · · 三晉과 힘을 모아 제나라를 정벌했다. 제나라 군사는 대패하여 閔王은 나라 밖으로 달아났다. 연나라 군사는 홀로 북쪽으로 진군하여 임치로 진격하여 제나라의 보배들을 모두 탈취하고 궁실과 종묘를 불태웠다. 제나라 고을 중 함락되지 않은 곳은 卽墨 뿐이었다.

 

燕昭王收破燕後即位, 卑身厚幣以招賢者, 欲將以報仇. 故往見郭隗先生曰齊因孤國之亂, 而襲破燕. 孤極知燕小力少, 不足以報. 然得賢士與共國, 以雪先王之恥, 孤之願也. 敢問以國報仇者奈何郭隗先生對曰帝者與師處, 王者與友處, 霸者與臣處, 亡國與役處. 詘指而事之, 北面而受學, 則百己者至. 先趨而後息, 先問而後嘿, 則什己者至. 人趨己趨, 則若己者至. 馮几據杖, 眄視指使, 則廝役之人至. 若恣睢奮擊, 呴籍叱咄, 則徒隸之人至矣. 此古服道致士之法也. 王誠博選國中之賢者, 而朝其門下, 天下聞王朝其賢臣, 天下之士必趨於燕矣. ”昭王曰寡人將誰朝而可?”郭隗先生曰臣聞古之君人, 有以千金求千里馬者, 三年不能得. 涓人言於君曰請求之.’ 君遣之. 三月得千里馬, 馬已死, 買其首五百金, 反以報君. 君大怒曰所求者生馬, 安事死馬而捐五百金?’ 涓人對曰死馬且買之五百金, 況生馬乎? 天下必以王爲能市馬, 馬今至矣.’於是不能期年, 千里之馬至者三. 今王誠欲致士, 先從隗始隗且見事, 況賢於隗者乎? 豈遠千里哉?” 於是昭王爲隗築宮而師之. 樂毅自魏往, 鄒衍自齊往, 劇辛自趙往, 士爭湊燕. 燕王吊死問生, 與百姓同甘共苦. 二十八年, 燕國殷富, 士卒樂佚輕戰. 於是遂以樂毅爲上將軍, 與秦 · · 三晉合謀以伐齊, 齊兵敗, 閔王出走於外. 燕兵獨追北, 入至臨淄, 盡取齊寶, 燒其宮室宗廟. 齊城之不下者, 唯獨莒 · 即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