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오랜만의 평화

검하객 2018. 8. 29. 11:52

 아주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커피를 마시고 시름없이 책을 읽는다. 최근 좀처럼 나아지고 있지 않은 눈의 피로조차도 쾌적하다!

 

  난 늘 그곳에, 먼 시간의 저편에 있다. 결코 그곳을 떠난 적이 없다. 과거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거나, 그곳에서 출발하며 산다. 이 과거는 단순하고 짧은 일화 형태로 반짝이는 기억이 아니라 현재다. 시간이 몰고 온 수천 가지 변화는, 시간을 초월하는 현재의 이 감각과 비교하면 꿈처럼 덧없고 비현실적이며 환영처럼 기만이 심하다.  (2권 28쪽)


  그레고리우스는 문득 친숙함이 그리워져 베른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그곳은 낯선 장소가 되었다. 그는 커튼을 내리고 프라두의 글을 읽는다. 이 글만이 어떤 안정감을 주었다. "기억의 현재성".

 

  우리 안에는, 우리가 그곳으로 돌아와야만 다시 찾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단조로운 바퀴소리가 우리가 지나온 생의 특정한 - 그 여정이 아무리 짧더라도 - 장소로 우리를 데리고 가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까이 가고 우리 자신을 향한 여행을 떠난다. 우리가 낯선 정거장의 플랫폼에 두 번째로 발을 디디면, 그래서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다른 곳과 획연히 구별되는 냄새를 맡으면 우리는 외형상으로만 먼 곳에 도착한 게 아니라 마음속 먼 곳에도 이른 것이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에게서 아주 외딴 구석, 우리가 다른 곳에 있을 때면 무척 어두워 보이지 않았던 곳에 ---. (29쪽)

 

  그래, 여행이란 이처럼 외적 계기, 육체의 공간 이동을 통해 마음 속 미지의 장소를 찾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