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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속도, <러다이트의 즐거운 나들이>

검하객 2019. 1. 1. 23:21

 

  2천년 전에도 과학의 사유로 중무장한 사람이 살았고, 오늘날에도 원시인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 2천 년만에 무덤에서 일어나도 현대의 과학과 기술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이 있을 테고, 2천 년 전에 데려다놓아도 별 보탬이 안 될 사람이 있다. 유형을 따지자면 난 후자에 속한다. 나의 과학 수준은 200여 년 전 홍대용에 미치지 못하고, 300년 전 박안기나 500년 전 장영실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난 우연히 금 시대에 태어나, 현대 과학 기술의 혜택을 누리며, 또는 과학 기술의 폭력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건 내 의지는 물론 능력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뿐만 아니라 경제도 모르고, 음악이나 미술은 더더욱 모른다. 나무나 음식, 물고기나 의약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인생의 지혜, 이런 건 더더욱 없다. 그런데 세상의 과학기술은 계속 진보하는데 최근에는 가속이 엄청나다. 어디선가는 끊임없이 그걸 강조한다. 거기에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위협한다. 사람들은 불안에 젖는다. 하지만 그들 중 95% 이상은 뭐가 어떻게 변한다는 건지 모른다. 학교에서, 방송에서, 정치인이 쉬지 않고 떠들어대기 때문에, 뭔가 달라지나보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렇게 떠들어대는 사람조차도 자기가 하는 말의 뜻을 모르는 게 태반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 무자비한 공세에 저항할 능력이 없다. 그저 파도에 떠밀려 가고 바람에 날려다닐 뿐이다. 난 그저 예전처럼 소박하게 살고 싶다. 시대에 뒤떨어져 사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다. 어차피 난 이 시대 사람도 아니었으니 뒤떨어졌다는 말도 맞지 않는다. 난 지금처럼 느리게, 비효율적으로, 어리둥절하면서 살아도 된다. 오래된 글을 읽고, 그 이전 시대를 상상하고, 여행을 삼가고, 눈치 없이 입바른소리 하고, 가끔 술을 마시며 주책도 떨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부적응자의 모습으로. 미숙한 상태로. 어차피 시대는 저 멀리 가서 보이지도 않는다. 뒤처진 채 지금까지의 속도로 놀며 쉬며 갈 수 있는만큼만 가자.

 

러다이트의 즐거운 나들이

커트 보니것 / 김한영 옮김, "나라 없는 사람" (문학동네)

 

  사람들은 나를 러다이트라 부른다. 마음에 쏙 드는 말이다. 러다이트란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최신식 기계를 증오하는 사람이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네드 러드라는 직물노동자가 새로 들인 여러 대의 첨단 기계, 즉 자동 직기를 때려부쉈다. ---

  나는 진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진보는 내게서 이백 년 전 네드 러드의 눈에 수동 직기로 보였음직한 소중한 물건을 앗아갔다. 바로 타자기다. 지금은 어디서도 그런 물건을 쓰지 않는다. 참고로 말하자면 타자기로 친 최초의 소설은 "허클베리 핀"이다. ---

  나는 다음 불록인 47번로와 2번가 모퉁이에 있는 우체국으로 향한다. 우체국은 유엔 건물과 아주 가깝기 때문에 언제나 전세계에서 온 재미있게 생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우체국으로 들어가 다시 줄을 선다. 나는 창구에서 일하는 아가씨와 남몰래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모르고 아내는 안다. --- 나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앞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 밖으로 나가면 우체통이 있다. 나는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커다란 황소개구리의 입에 원고를 넣는다. 녀석은 "개술"하고 외친다.

  이제 집으로 향한다. 즐거운 나들이였다.

  전자 공동체에는 실체가 없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인간은 춤추는 동물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대문을 나서서 뭔가 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리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냄새를 피우기 위해서다. 누군가 다른 이유를 대면 콧방귀를 뀌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