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거인의 손길
검하객
2019. 2. 9. 11:25
목 뒤에 닿는 손길이 왠지 서늘했다, 닭의 등에 얹히는 매 발톱의 첫 느낌이 이러할까, 나도 모르게 몸을 돌려 세웠다. 거인은 손 위치 그대로 날 내려다보는데, 표정 속에 뭔가 농익은 과일 향 같은 것이 묻어 있다. 날 받아주고 길러주었던, 언제나 내 편이라며 다독여주던 그에게서 거리감이 느겨진다. 그가 등 뒤에 있으면 세상 아무 것도 무섭지 않았는데, 문득 그의 긴 그림자가 나를 그늘 속에 가두고 있지 않은가! "왜 그래?" 거인은 애써 계면쩍음을 풀고 살짝 무릎을 굽혀 얼굴을 들이민다. 나는 다시 흠칫 놀라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스하건만 눈길 속에서 거역할 수 없는 냉정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그냥 ---" 오랜 친구였던 우리는 잠깐 거리를 두고 섭리의 눈길을 주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