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과 경멸 (분노의 포도)
난 오래 전, 내가 태어나기도 전 시대에 머물러있다. 나는 멈춰있는데, 세상은 계속 나를 앞질러 저만큼 앞서간다. 때로는 과거의 세상도 나를 지나쳐 간다. 가끔 나처럼 망연히 혼자 서있거나, 주변의 속도를 이기지 못해 휘청거리는 사람이 있다. 모두 속도와 변화, 경쟁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로 보인다. 나는 끝끝내 이렇게 멈춰있다가 사라질 것이다.
말이 일을 마치고 마구간에 돌아가는 경우를 보자. 그래도 말에게는 생활이 있고 생명력 같은 것이 있는 법이다. 숨소리와 훈훈한 입김이 있고, 발로 짚 바닥 위를 디디고 서서 꼴을 뜯으며 입과 귀와 눈에 생명이 넘치는 것이다. 마구간 속에는 훈훈한 생명의 입김이 있으며 생명의 기운과 냄새가 있다. 그러나 트랙터는 일단 발동이 꺼지면 쇳덩어리에 불과하며 금방 죽어버린다. 마치 시체가 싸늘하게 식어가듯 달아오르던 트랙터는 열을 잃는다. 함석 문이 닫히고 운전수는 돌아간다.
이것은 간단하고 능률적인 것이다. 너무 간단하기 때문에 아무런 놀라움이나 신비스러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너무나 능룰적이기 때문에 경이의 감정이 땅으로부터 빠져나가 버린다. 경이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과 함께, 땅과 땅의 경영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계마져 없어졌다. 트랙터 운전수의 마음속에는 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관계도 없는 그런 사람들만이 느끼는 경멸의 감정이 싹트게 된다. --- 그는 땅을 경멸하며 자기자신마저 우습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분노의 포도」(전형기 역) 11장, 150,1쪽.
80년 전 미국에서 살았던 어떤 사람이 내 안에서 사유하고 말한다. 존중은 신비감과 연결되어 있다. 다 안다고 생각하거나, 수단으로 간주하게 존중도 사라진다. 존중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경멸이 싹트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