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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조선의용군의 동향
검하객
2019. 7. 26. 15:12
1945년 9월 27일, 조선의용군 冀魯豫(하북·산동·하남) 지대는 北洋을 떠나 동북으로 향했다. 10여일 뒤 玉田에 이르러, (김)武亭(1905~1952)이 인솔하는 태항산 대오와 합류했다. 중원지대와 태항산에서 나온 조선의용군은 3백여 명이었다. 기로예지대는 제1중대로 편성되었다. 부대는 산해관을 넘어 錦州에서 연안에서 나온 동지들과 만났다. (玉田과 九門口關에서 대규모 전투가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확인 요) 10월말 심양 교외 황고툰(皇姑屯)에 도착했다. 조선족과 한족이 섞여 사는 마을에 주둔. 11월 7일 오전, 심양역에서 쏘련사회주의 혁명 28주년을 기념하는 대회에 참가했다, 심양역 광장에 솟아있는 땅크탑은 그때 세운 것이다. 11월 10일 심양시 오가황소학교(지금의 于洪區 朝鮮族吳家荒中心小學校)에서 1,000여 명 조선의용군 전체 대회가 있었다. 2,3일 뒤 1,000여 명 조선의용군 전체는 한 소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김두봉과 무정이 연설했다. 무정은 부대 대부분은 조선에 가서 조선 독립과 건설에 참가하고, 일부는 동북에 남아 팔로군과 함께 동북 조선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것이라고 했다. 1지대는 료녕성, 3지대는 흑룡강성, 5지대는 동만에 파견하기로 결되었다. (사진과 글은 모두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5, 1992년])
* 晉察冀 (山西, 察哈爾 : 張家口 서쪽, 河北)
冀熱遼(하북, 열하, 요녕)
사진 서쪽이 오가황조선족중심소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