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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반복과 전복, 두려움의 두 가지 결과

검하객 2019. 8. 12. 11:22


  "컴플렉스는 때로 위대한 힘을 만들어내는 법입니다."


 키도 더 크고 인물도 더 좋은 조선 사람들이 왜 일본인들의 지배를 받는지 알 수 없다는 님 웨일즈의 질문에, 아나키스트 김산이 한 답변이다. (아리랑) 박경리는 뒷날 "토지"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다. (* 역사학자 강만길이 이 책을 박경리에게 빌려준 일이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어느 책을 먼저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두 책에서 똑같은 구절을 보고 어리둥절했던 일이 있다.) 


 일본의 경제 침략이 있기 전부터, 종종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들은 한국인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나? 마음속 깊은 곳에 두려움이 있나?' 이 말을 우미영에게 하자, 그가  "두려워할 줄 아는 거지, 그래서 강한 거야." 그래, 내 느김이 틀리지 않다면, 일본인들에게는 두려움이 있다. 옛날 그들을 가리키는 이름은 '倭(人, 國)'였다. 아주 자잘한 종족이었던 거다. 그들은 키 크고 인물 좋은 이웃 나라 사람들을 두려워했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했다. (* 지진도 한 요인이었을 것) 하여 그 관계가 전도되었다. 그들은 잘 준비된 힘과 정교한 셈으로 이웃나라들을 침략하고 지배하고 학살하고 조롱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우리를 두려워한다. 마음을 놓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일본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무시했다. 난쟁이에 가까운 신체조건에 뻐드렁니의 그들을 야만시했다. 우월감에 사로잡혀 별반 노력이나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그 倭人들이 힘을 키웠고, 문명과 기술을 발달시켰고, 끝내는 조선을 병탄했다. 그들은 러시아와 싸웠고, 중국을 침략하여 그 영토의 일부를 점령했으며, 미국과도 싸웠다. 왜인들을 무시했던 우리들은 이제 抗日과 反日을 말한다. 그들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전제한 용어이다. 이는 2000여 년 동아시아의 제국이었던 중국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되풀이되기도 하고, 뒤집어지기도 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무엇이 반복과 전도를 결정하는가? '두려워할 줄 아는가 모르는가'의 차이이다. 두려움은 피해의식과 자기위축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철저한 준비와 정교한 계산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우리는 일본 우위의 역사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두려움에 그치면 역사가 반복될 것이고, 준비와 계산으로 나아가면 역사가 뒤집어질 것이다. 일본은 여전히 우리를 두려워한다. 그들의 내면에는 그러한 유전자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준비하고 노력하고 계산한다. 


  자 이제 한 번 상대를 두려워해보자.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은 비겁하거나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고,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고, 준비하고 노력할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