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사씨남정기를 읽는 시간, 두 개의 의문

검하객 2019. 9. 19. 10:57


  사씨남정기를 다시 읽었다. 읽는 내내 김만중은 왜 이런 이야기를 지어냈을까, 왜 이런 사건을 이렇게 그려냈을까 생각했다. 일단 대개 납득되지 않는 가운데, 살짝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다. 劉炫의 부인은 延壽를 낳자마자 세상을 떠나고, 유현의 누이동생도 杜康과 혼인한 지 얼마 안 돼 남편을 잃고 친정으로 돌아오며, 유연수의 아내가 되는 - 이 소설의 주인공인 - 謝氏의 부친 사후영도 일찍 세상을 버린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유연수와 사씨는 각각 편부와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며, 두강의 아들도 마찬가지이다. 뿐만 아니라 유연수의 첩실이 되어 여러 사건을 일으키는 喬彩蘭, 유연수의 문객의 되어 풍파의 눈이 되는 董淸은 조실부모하였고, 사씨 소생 麟兒를 키웠으며 유연수의 후실이 되는 任氏도 어려 부모를 잇달아 잃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설정에 김만중의 무의식 속 트라우마가 반영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김만중의 생애에 대한 정보가 과도하게 작용한 탓일까?     


  목판 한글본 사씨남정기의 서두는 "화설, 명나라 가정 년간 金陵 順天府에 한 명인이 있으니 ---", 하는 서사 시공간 설정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金陵은 예로부터 南京의 다른 이름이었다. 順天府는 明 成祖 朱棣가 조카 建文帝에게서 皇位를 탈취한 뒤, 永乐 元年(1403), 北平北京으로 승격시켰고, 北平府顺天府로 바꾸었다. 18(1420)에는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고 남경을 陪都로 삼았다. 북경에 설치된 순천부는 이후 청나라를 거쳐 辛亥革命 직후인 1914년 京兆地方으로 개편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북경이 금릉으로 불려진 적은 없다. 그런데 이야기의 전개를 보면, 서사 공간이 지금의 북경 지역임을 알 수 있다. 김만중은 왜 금릉 순천부라고 했을까? 서사적 장치일까, 아니면 단순한 실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