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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를 읽는 시간 2, 동정호와 소상강의 장소 의미

검하객 2019. 9. 19. 11:42


  사씨는 7년의 액운을 견디기 위해 뱃길을 이용하여 長沙로 간다. 이것이 이른바 南征이다. 그런데 갑자기 풍랑이 일어 배는 동정호로 들어가더니, 멱라수와 소상강이 잇달아 나온다. 모두 장사 부근에 있는 지명들이니, 지리 정황이 정밀하지는 않지만 크게 어긋난 것도 없다. 이어 아황과 여영이 순임금을 따라 죽은 이야기, 굴원이 쫓겨나 멱라수 물고기에 자기 몸을 장사지낸 이야기, 그 뒤에 다시 가의가 장사에 유배왔다가 제문을 지어 굴원을 조문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몇몇 장소와 인물들의 사연은 근대 이전 한국문학, 특히 소설에서 자주 만나는 장면이다. 남편을 따라 죽은 아내, 현주를 만나지 못하고 간신들에 의해 쫓겨난 충신, 이들의 사연이 왜 그토록 자주 호출된 것일까? 동정호 일대와 이들의 사연이 하나로 묶여 서사의 분위기를 만드는 장면의 시작은 이 <사씨남정기>였을까? 이 장면은 후대에 얼마나 자주 얼마나 비슷한 모습으로 계속 소설에 설정되어 있을까? 아래는 해당 장면이다.


  "홀연 풍랑이 크게 일고 배가 바람에 쫓겨 洞庭湖로 향하여 岳陽樓 아래 이르니 옛적 열국 때 나라 지경이라. 임금이 나라 안을 순행타가 蒼梧 들에 와서 돌아가매 두 왕비 娥皇女英이 따라가지 못해 瀟湘江 가에서 울 새 피눈물이 흐른지라 대숲에 뿌렸더니 대에 핏방울이 튀어 아롱진 점이 박혔으니 이것이 이른바 瀟湘斑竹이라 하는 것이다. 그 뒤에 초나라 충신 屈原이 충성을 다하여 懷王을 섬기다가 간신의 참소를 만나 강남으로 귀양 오매 이에 수간초옥을 짓고 있다가 몸을 汨羅水에 던졌으며, 나라의 賈誼는 낙양 재사로서 대신에게 무이어 장사에 내치매 역시 이곳에 이르러 제문 지어 강물에 던져 굴원의 충혼을 弔喪하였는지라, 이러한 까닭으로 지나는 손들로 하여금 가장 강개한 회포를 자아내게 하는 곳이라. 그러므로 매양 九嶷山에 구름이 끼고 소상강에 밤이 들고 동정호에 달이 밝고 黃陵廟에 두견이 슬피 울 때이면 비록 슬프지 아니한 사람이라도 자연 눈물을 뿌리지 않을 수 없거든, 하물며 신세가 처량한 사람이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