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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용화 마을
검하객
2019. 11. 24. 22:24
아이들과 헤어지고, 허기를 견디지 못해 빗속을 쏘다녀보았다. 신철원역에서 두리를 보내고, 삼부연 폭포 동쪽 3km 지점에 있는 용화동마을을 찾았다.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 90년대 초반 후배들과 함께 답사 겸 나들이로 삼부연 폭포를 찾았다. 폭포 아래 집에서 민박을 했는데, 열두어 명이나 되는 우리들은 긴 방에서 나란히 잠을 잤다. 내게는 몇몇 실낙원의 풍경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때는 경험도 공부도 물력도 부족하여, 삼연이 살았던 마을을 찾는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삼연은 1688년 영암으로 유배갔던 부친 김수항이 철원으로 이배되자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고, 이듬해 7월부터는 아예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와 정착했다. 마을 이름은 그때도 龍華였다. 그는 2년 정도 이곳에 머물다가 1691년 부친의 명으로 서울로 돌아간다. 삼연집에는 이 시절 지은 시가 꽤 많이 남아있다. 아래는 새로 집을 짓고 난 뒤의 감회를 읊은 <三淵新構> 이다.
雞犬人煙瀑布東, 白茅爲屋據穹崇. 千巖映發秋冬際, 一逕盤紆雲霧中. 削玉蓮花峰秀出, 彈琴鬼谷水回通. 此中洗藥兼風珮, 未必僊居讓葛翁.
겨우 2년을 살았으니, 그 터를 짐작하긴 불가능하다. 더구나 둑을 쌓아 용화저수지를 만들었으니, 마을의 위치는 지금과 조금 달랐을 수도 있다. 비는 계속 내렸고, 우리는 눈앞의 풍경으로 허기의 일부를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