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따스한 불빛을 좇아
검하객
2019. 11. 26. 09:17
그제 봉선사를 돌아나오는데, 기념품과 차를 파는 건물에 노란 불빛이 가득했다. 따스해 보였다. 어제 교내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데 백남음악관 안이 환했다. 이끌리듯 안으로 들어가보니 7시부터 국악제 시작인지라 한창 연습중이었다. 우린 망설이지 않고 객석을 지키기로 했다. 일정표에 들어있지 않은, 합목적성으로부터의 일탈, 여름 이후 일정표 밖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제부터 작은 일탈의 연속이다. 좋다! 길을 가다가 미술관에 들러 그림을 보고, 길을 가다 산길로 접어들어 산사를 찾고, 길을 가다 카페 불빛이 좋아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길을 가다가 극장에 들러 영화를 보고, 또 길을 가다가 석양의 손짓에 잠시 발을 멈추고, 또 길을 가다가 돌아오지 않을 옛 생각에 젖고, 책을 읽다가 눈을 감고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길을 벗어나면서 우리는 비로소 계획과 목적이라는 감옥에서 풀려나온다. 18년만에 출소한 장발장은 디뉴의 여러 여관에서 쫓겨난 뒤 따스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어떤 농가를 찾아간다. 저렇게 평화로운 집이라면 자기를 받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