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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맛, 吟味

검하객 2019. 12. 16. 12:49


  맛을 잃은 지 오래이다. 배 고프면 뭔가를 찾아 먹기는 하는데, 그 맛을 특별히 고려하지 않는다. 가격이 높지 않고, 먹을 만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먹는 것에 대한 설렘이 없다. 먹을 때도, 주림이 조금씩 사라지는 걸 느낄 뿐, 혀끝의 감각은 무디고, 마음에도 별 즐거움이 없다. 마찬가지로 글을 읽거나 쓰는 일에서도 맛을 잃었다. 직업으로 잃고, 의무로 쓴다. 내 글이든 남의 글이든, 그건 저기 저곳에 있는 '그것'일 뿐이다. 맛을 잃어버린 지 벌써 두어 달은 된 듯하다. 때로 내가 쓴 글은 갓 나온 알처럼 따스하고, 남의 글은 고양이처럼 가릉거리며 다가왔는데, 마치 공장에서 주문을 받고 기계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듯하다. '맛'이 사라진 것이다. '맛'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지금은 자주 여러 모로 사용되는 '吟味'는 생각보다 자주 사용된 단어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음식 맛에 사용되지도 않았다. 시문의 감상에 전용된 단어였다. 용례는 모두 '읊조려 그 맛을 느끼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백낙천이 남긴 노래가 있어, 때로 음미하며 기심을 잊네. 賴有樂天遺頌在, 有時吟味益忘機."(이규보) ; "상큼하게 서권을 뒤적이다가, 낮게 읊조리면 맛이 다시 새로워. 快意翻書卷, 沈吟味更新."(이색) ; "세상 이치 그대게서 깨우치나니, 낮게 읊조리면 맛이 다시 새로워. 物理從君會, 沈吟味更長." (박세채) ;  "곳곳에 옛 기억 새록새록 떠오르니, 옛 구절 읊조리면 맛이 다시 새로워. 題襟到處煩相憶, 舊句重吟味更新. (박제가) 등이 몇 안 되는 사례이다. 음식이든, 시문이든, 지금 중요한 일은 행방이 묘연한 맛을 찾는 일이다.  맛이 의미이고 가치이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