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月空山虎養精
"흰 밤 빈 설산에서 범은 정기를 기른다." 이 구절은 "갈바람 속 늙은 잣나무 매는 새끼를 낳고 秋風古栢鷹生子."와 짝을 이루어 전승되었다. 보통 채제공(1720~1799)이 젊은 시절 권귀가의 자제들과 함께 공부하다가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늙은 잣나무는 수명이 다한 권귀가를, 가을에 새끼를 낳는 것은 권귀가의 자제들이 시련을 이기기 어려울 수밖에 없음에 반해, 자신은 난경 속에서도 절치부심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해석되곤 한다. 드물게 李文源(1740~1794)의 이야기로도 전한다. 전승에 따라 글자가 일부 바뀌기는 하지만 대의는 거의 다르지 않다.
실제 이 시귀가 실린 문집은 없다. 야담이나 설화로 전해져온 것이겠다. 다만 '鷹生子'와 '虎養精'이 짝으로 쓰인 시구는 정범조(1723~1801)의 문집에서 발견된다. 정범조는 1771년 3월 으로 유배 가던 중, 厚峙嶺(북청과 풍산 사이, 해발 1334m)에 올라 시 3수를 지었는데, 그중 두 번째 시에 "層巓黑栢鷹生子, 積雪陰崖虎養精."란 구절이 들어있다. "층층 고개 검은 잣나무에 매는 새끼를 낳고, 눈 쌓인 어둔 벼랑에서 범은 정기를 기른다."는 정도의 뜻이다. 아직 겨울 기운이 매서운 함경도 높은 고개 위에서, 흥에 따라 상상한 풍경을 그린 것인데, 여기 누군가를 염두에 둔 절치부심을 담은 것으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눈에는 물론이요, 웬만한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상이, 그리고 마음도 얼어붙어 있는 시절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두렵긴 하다. 진짜 공포는 이 드러나지 않음에서 비롯한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이 구절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