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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움의 삶과 헬리콥터, 그리고 시인, 「헬리콥터」(1955)
검하객
2020. 3. 6. 11:50
헬리콥터 (1955)
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우매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이었다
헬리콥터가 풍선보다도 가벼웁게 상승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었던 사람은 설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또한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설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의 말을 잊고
남의 말을 하여왔으며
그것도 간신히 떠듬는 목소리로밖에는 못해왔기 때문이다
설움이 설움을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젊은 시절보다 더 젊은 것이
헬리콥터의 영원한 생리이다
……
수직 상승하는 헬리콥터의 모습에서 착상되었을 것이다. 이 시는 “‘설움의 삶’은 헬리콥터”라는 은유에서 출발한다. 헬리콥터는 육중한 몸으로 가볍게 날고, 설움으로 짓눌린 삶도 나비처럼 하늘을 난다. 헬리콥터를 날게 하는 것이 물리적 부력이라면, 설움 가득한 삶을 날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시이며, 시인이다.
몸 안의 설움이 다른 설움을 먹고 먹어 누적된 엄청난 설움의 무게를 지닌 채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있다. 그들은 자기 말을 잊은 지 오래이다. 고장 난 녹음기처럼 자기 몸에 입력된 권력의 말, 지배자의 말, 억압의 말, 허위의 말만을 떠듬떠듬 내뱉었을 뿐이다. 그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말을 하고, 그들을 날게 한 것은 시이고,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