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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화상 오누이

검하객 2020. 4. 6. 10:47


나옹화상(懶翁和尙, 1320~1376)語錄에 누이동생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이 실려 있다.

 

어려서 출가한 뒤로 세월을 기억하지 않았고, 관계의 멀고 가까움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니, 오로지 佛道만을 생각하며 오늘에 이르렀다오. 유교의 가르침에는 親情愛心이 있지만, 우리 불도에선 거기에 사로잡히면 크게 어그러지게 됩니다. 이 말의 뜻을 새겨 親見하겠다는 마음을 잘라버리고, 하루 열두 때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며 말을 하고 일하는 곳 어디에서나 아미타불을 마음에 담아두기를 바라오. 올 때나 갈 때나 아미타불을 염하며, 또 제 5·8(나옹이 속가의 누이에게 준 책의 장절목인 듯)을 지니어 염하지 않아도 절로 염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면, 나에게 기대는 마음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잘못 육도윤회의 고통에 빠지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꼭 그렇게!

 

아미타 부처님은 어디 계신가       阿彌陁佛在何方

마음 끝에 붙어 계심 잊지 마시라  着得心頭切莫忘

염불 끝에 염이 사라지게 되면      念到念窮無念處

육근에서 늘 자금광이 나오리       六門常放紫金光

 

答姝()氏書

自小()出來 不記年月 不念親踈 以道爲念 已到今日 於仁義道中 不無親情 及與愛心 我佛道中 纔有此念 便乃大錯也 請知此意 千萬斷除親見之心 常常二六時中 着衣喫飯 語言相問 所作所爲 於一切處 至念阿彌陁佛 念來念去 持來持去第五八張 到於不念自念之地 則能免待我之心 亦免枉被六道輪廻之苦 至囑至囑 頌曰


왠지 짠한 느낌이 들어, 한참 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어려서 헤어진(아님 집을 떠난 뒤 태어났을 수도) 누이동생 만나는 게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어려울 게 뭐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무심히 책장을 넘기는데 歌頌머리 깎고 승려가 되는 누이 妙緣을 위해 爲妹尼妙綠落髮이란 제목의 시가 나온다. 뭐지? 그 누이동생인가?

 

무명의 풀뿌리를 모두 다 베어내면   剗盡無眀荒草根

당당한 불성 계율 저절로 원통하리   堂堂性戒自周圓

이로부터 천 갈래 길 밟지를 말고    從今不蹋千差路

시간 밖 위음 근원 곧장 다가가기를   直透威音劫外源

  

아마 그 누이가 이런 저런 번민 끝에 오빠를 찾았다가, 거절당한 뒤에 크게 결심하고 출가를 했던 것일까? 누이의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쏟아진다. 오라비도 누이도 울지 않는데, 왜 나는 혼자 눈시울이 뜨거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