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벽랑정사(碧浪精舍)의 객선(客禪)에게

검하객 2020. 7. 9. 11:04

만 겹 청산 암자에서 겨울을 견디더니, 벽랑 이는 바닷가 정사에서 하안거(夏安居) 시작하네. 눈 내린 날 박새의 날갯짓은 어떠했으며, 안개 속을 헤엄치는 청어의 표정은 어떠한가! 그곳은 문장이 단련되는 대장간이고, 사유가 무르익어 목화처럼 터지는 난실이며, 이야기의 알들이 차례로 부화하는 오목눈이의 작은 둥지. 그곳은 또 覺悟迷妄이 고요히 으르렁거리는 무문관 선방이고, 좌절과 허무가 쉼 없이 떨어지는 폭포이며, 희망과 사랑의 감미로운 선율이 살갗을 간지럽히는 무간지옥. 솜 같은 언어의 편지를 실은 마차가 덜컹거리며 떠나가고, 모래알 언어의 답신이 서걱거리며 도착하는, 오랜 은행나무가 서 있는 우체국 마당. 바람이 맴돌며 머물고 멈칫거리며 떠나지 못하는, 객선의 해인삼매가 이리저리 번듯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