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하객 2020. 12. 9. 23:22

  바로 그때, 그의 앞에서 뭔가 작은 것이 먼지 위를 움직였다.

  그는 여행용 가방을 떨어트리고, 플라스틱 약병을 하나 꺼내 들었다. 여느 사람들처럼 그 역시 이럴 때를 대비해 들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거미였다. 그는 손을 떨면서 그놈을 병 안에 살살 집어넣고 뚜껑을 꽉 닫았다.

  프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아, J.R.? 내 생각에 이 녀석은 그 다리가 전부는 필요 없을 것 같다.”

  “여덟 개라고?” 이름가르트 바티가 말했다. “그놈은 왜 네 개만 갖고는 살지 못한다는 거지? 네 개를 잘라낸 다음,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녀는 충동적으로 핸드백을 열더니, 깨끗하고도 날카로운 손톱 가위를 꺼내서 프리스에게 건네주었다.

  기묘한 공포가 J.R. 이지도어를 엄습했다.

  프리스는 약병을 부엌으로 가져가더니, J.R. 이지도어의 아침 식사용 식탁에 앉았다. 그러고는 뚜껑을 열고는 병을 뒤집어 거미를 꺼냈다. “그러면 이전만큼 빨리 달리지는 못하겠지.”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먹을 것도 전혀 없긴 하잖아. 어쨌거나 죽고 말 거야.” 그녀가 가위로 손을 뻗었다.

  “제발 하지 말아요.” 이지도어가 말했다.

  프리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게 그렇게 가치 있는 생물이야?”

  “그 녀석 다리를 자르지 말아요.” 그는 숨을 헐떡이며 애원했다.

  프리스는 가위로 거미 다리 하나를 잘라냈다.

  ……

  프리스는 가위를 가지고 거미의 다리를 또 하나 잘라냈다. 바로 그 순간 존 이지도어가 그녀를 밀치고는 다리가 잘려나간 생물을 손으로 집어 들었다. 그는 싱크대로 달려가 거미를 물에 빠트려 죽였다. 그의 내면에서 그의 정신이, 그의 희망이 함께 물에 빠져 죽어버렸다. 그 거미처럼 순식간에 말이다.

 

필립 K. / 박중석 역,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폴라북스, 2014, 309~318쪽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