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紙碑 (쉬이 없어지는 기억)

검하객 2020. 12. 29. 16:27

  내 키는 커서 다리는 길고 왼 다리 아프고 안해 키는

작아서 다리는 짧고 바른 다리가 아프니 내 바른 다리

와 안해 왼다리와 성한 다리끼리 한 사람처럼 걸어가

면 아아 이 부부는 부축할 수 없는 절름발이가 되어

버린다 무사한 세상이 병원이고 꼭 치료를 기다리는 

無病이 있다

 

  지비는 종이로 만든 돌기둥(빗돌, 비석, 묘비 등)이다. 碑는 글을 새긴 돌이고, 이는 지워지지 않는, 즉 망각되지 않는 영원한 기억을 의도(미)한다. 그런데 종이로 만든 碑이니, 그런 의미가 부질없다. 망각되지 않아야 할 세상의 미덕 중에는 신뢰, 약속, 우정, 다짐 등이 있다. 거기에 사랑도 포함될까? 어쨌든 지비로는 그런 미덕들을 유지하거나 지켜낼 수 없다. 쉽게 깨지거나 지워지는 신뢰와 약속과 우정과 다짐은, 안해와 관련이 있다.   

 

  태평해 보이는 세상은 기실 환자들 투성이의 병원이다. 이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병원이다. 그런데 이 병자들은 자신들이 병자인 것을 모르기 때문에 치료 받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멀쩡한 세상은 실제로는 병원이니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환자가 아니다. 멀쩡한 사람은 병자가 되어 치료를 기다리는데, 병자들은 자기들이 병자임을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