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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발언의 매력과 스타벅스 커피의 유혹

검하객 2012. 12. 10. 09:16

  한국의 작금 정치구도는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라기보다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결이다. 이 대결에서는 강경파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왔다. "(집권 초기 이명박) 대통령이 공권력으로 확 제압했어야 했다. 청와대 뒷동산에 올라 촛불을 보며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자랑스럽게 공개해 국민을 실망시켰다."(김무성), “낙선한 문 후보가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 찾아가 부엉이 귀신을 따라 저 세상에 갈까 걱정이다.”(김중태) “안철수 관련 보도가 너무 많다.”(이정현) 최근 새누리당 안에서의 이런 섬뜩한 발언들은 유신독재나 광주만행의 정치적 유전자이다. 강경파의 신앙은 폭력(무력)이며, 존립의 토대 또한 폭력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이런 강경파는 자기 이익을 위해 탄생하고, 강한 외세에 의존하고, 겉으론 도덕을 내세우지만 안으론 인권을 유린하며, 때로 섬뜩한 이분법으로 사람들을 선동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한국 사회에서 강경파의 득세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임병양란 이후 지배층은 책임을 지기는커녕 더욱 강경하게 이념의 고삐를 죄면서 기득권을 강화해나갔다. 지배층 내부의 오랜 권력 다툼에서도 강경파가 승리했는데, 이들이 바로 이른바 노론이다. 이들은 폐쇄적인 정책을 고수하여 백성들의 시야를 통제했고, 안으로는 反淸의 분노를 경멸을 내세우면서도 밖으로는 청나라에 굴욕하여 종속외교를 고착시켰으며, 인륜과 예법을 내세워 약자들을(여성, 청년, 피지배층)을 세뇌하는 동시에 탄압했다. 결과 조선은 망했다. 강경파의 주도와 논리 아래 국권을 상실한 것이다. 이는 이후 지배층의 친일 → 분단 및 반공 → 유신독재 → 광주 학살로 이어진다. 김무성과 김중태의 발언에는 폭력적 일방성에 대한 그리움과, 그렇게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강/온이 격돌하면 대개 후자는 목숨 걸고 나서는 악착같은 전자를 견디지 못한다. 조선 후기 少論이 그러했고, 독재정권의 폭력에 대응하는 시민들이 그러했다. 조중동과   새누리당에 맞서는 비주류언론과 야당도 그럴 수밖에 없다. 기득권 계층은 또 서로 서로 연대한다. 새누리당은 권력 유지를 위해 검찰, 재벌, 사학재단, 주류언론, 경상도, 어버이연합, 한기총 등과 연대한다. 이들은 서로를 도와주며 허물을 눈감아주는데, 그런 가운데 사회 모순과 부조리가 발생한다. 이들 기득권계층이 비판자들을 대하는 방식 중의 하나가 불순분자, 빨갱이, 체제부정 집단, 종북, 사회전복 세력 등으로 규정하여 척결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런 폭력 앞에서 몸을 움츠리거나 눈을 감지 않을 사람은 없다. 강경파가 잔인하게 나오면 거기에 대응하는 세력은 자연 온건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외형상 보수 절대 우위 국가가 좀처럼 바뀌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극히 일부의 기득권 계층은 어떻게 해서 반에 가까운 평범한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것인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국민이다. 깨어있는 시민이 아니라 우둔한 백성이며, 비판하고 따지는 시민이 아니라 그저 순종하는 길들여진 백성이다. 우둔하고 무식한 백성을 설득하는 데는 강경발언과 이분법만한 것이 없다. 논리가 결여된, 배타적 증오로 가득 찬 강경 발언은 일종의 햇빛이다. 강렬한 조명이다. 사유와 비판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의 시선은 햇빛이 비추는 곳만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우민화되는 것이다. 그 허위를 알아챈다 해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쫄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끝없이 비논리적 강성 발언을 내뱉는 것은, 이를테면 시민들을 얕잡아보는 행위이다.

 

  강경 발언은 햇빛이고, 이는 강렬한 이미지이다. 쿤데라는 “이미지에 저항하는 능력이 지적 능력의 가늠자”라고 했다. 스타벅스 커피 가격에 내재된 불평등과 착취를 알면서도 사람들은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스타가 마시는 그 커피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얼마 전 유시민이 스타벅스 커피로 곤욕을 치른 것은, 아무리 지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이라도 이미지의 유혹을 벗어버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미지는 모두 조작되고 왜곡된 형상에 지나지 않는다. 강경 발언에 휘둘리는 것은 화려한 이미지에 유혹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단순한 감정의 매력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건 쵸콜릿의 단맛이나 마약의 환각과 똑같은 것이다. 당장은 편하고 좋지만 끝내는 우리 사회를, 우리 아이들의 삶을 피폐하게 할 것이다. 그저 차갑게 응시하라. 그러면 거짓은 스스로 눈을 감을 것이다. 그리고 뜨겁게 투표하라.

 

  마음이 안타까우니 이런 글도 쓰게 되는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