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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세(橘稅)

검하객 2021. 2. 24. 13:18

  조선 중기에는 제주도 백성들에게 귤세를 매겼는데, 봄이 열매가 맺힐 때 관원이 와 그 숫자를 헤아려 적었다가, 가을에 그 숫자만큼을 요구했다고 한다. 제주를 공부하다 관심이 귤에 미쳐, 귤세를 찾아보았는데, 생각보다 자료가 많지 않다. 미역[海藿]이나 소금에 매겼던 세금도 궁금해진다. 또한 거두어 담아둔다. (번역은 고전번역원)

 

유자 시 20詠柚詩 二十首 幷序

남구만, 약천집 권 2, 15번째 시

 

  歲己未, 承恩譴配巨濟移南海, 及秋深夜長, 眠睡益少而氣素羸弱, 眼且昏翳, 不能曉燈讀書. 輾轉枕席, 無與晤語, 因作詠柚詩, 疊韻成二十首. 非以爲詩, 聊自遣意耳. 此地環海斥鹵, 草無蘭蕙, 樹無椒桂, 如欲飮芳而餐馨, 佩芬而服香, 捨此柚何以. , 柚雖一微物, 比興之體, 遠邇之義, 亦可於此乎推之. 意之留連而不已. 言之煩複而不删者, 有以也夫

  기미년(1679, 숙종 5)에 나는 성상의 명령을 받들고 거제도(巨濟島)로 유배 갔다가 남해(南海)로 옮겨 갔다. 가을이 깊어 밤이 길어지자 잠이 더욱 적어졌으며, 평소 기력이 허약한데 눈까지 어두워져서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전전반측하며 함께 말을 나눌 사람이 없기에 유자를 읊은 시를 지어서 첩운(疊韻)으로 20수를 이루었으니, 이것을 시라고 여겨서가 아니요, 애오라지 스스로 적적한 마음을 달랬을 뿐이다. 이 지역은 바다로 둘러싸여 염분이 많아 풀은 난초(蘭草)와 혜초(蕙草) 같은 것이 없고 나무는 천초(川椒)와 계수나무 같은 것이 없으니, 향기로운 것을 마시고 먹으며 향기로운 물건을 차고 입고자 한다면 이 유자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 유자는 비록 하찮은 한 물건이나 비흥(比興)의 체()와 멀고 가까운 뜻을 또한 여기에 미룰 수 있으니, 마음이 이끌려 차마 끊어버리지 못함과 말이 중복되는데도 삭제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지방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수십 년 전에는 마을의 집에 유자나무가 곳곳마다 숲을 이루어서 매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는 유자의 누런 빛이 숲에 찬란하여 바라보면 구름비단과 같았는데, 근래에 마을 백성 중에 유자나무가 있는 집이 있으면 관청에서 장부를 만들어 등재하고는, 가을철 유자가 익을 때에 아전을 보내어 나무마다 숫자를 세어 두었다가 거두어 갔다. 백성들은 이미 아전에게 바치는 비용이 많고 또 관청에 바치는 수고로움이 있으며, 심지어는 혹 숫자를 세어 간 뒤에 바람으로 인해 떨어진 것이 있으면 그 주인이 다른 곳에서 사다가 더 보태어서 그 숫자를 채워야 했다. 그러므로 관리와 품관(品官)으로서 다소 세력이 있는 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하호(下戶)와 백성들은 모두 유자나무 뿌리에 불을 놓고 나무 그루를 베어서 그 폐단을 없앴다. 이 때문에 유자나무를 심는 집이 예전에 비하여 십분의 칠팔 할이 줄어들었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서글퍼하였으니, 이는 바로 자미(子美)의 시에 고을 백성들이 소중한 밀감을 중하게 여기지 않음은, 호리의 침해에 핍박받기 때문이라오.邦人不足重 所迫豪吏侵라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백성의 윗사람된 자들에게 알리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으므로, 인하여 시를 지어 홀로 읊었다.

 

  천 명의 종이 십 년 걸려 가꾸었는데 千奴栽得十年遲

  무슨 일로 뿌리에 불 놓고 껍질에 도끼질하나 何事燒根且斫皮

  다강(茶綱)만 고을의 원망을 부르는 것 아니니 不獨茶綱招邑怨

  예로부터 귤의 세금 백성들 살을 베어 갔네 從來橘稅割民肌

  꺾이고 쇠잔함 복숭아를 시기하는 여자 만난 듯 摧殘似遇猜桃女

  황폐함은 가시나무를 기르는 원예사가 되었구나 荒廢眞成養棘師

  나는 이 말을 들으매 마음이 몹시 서글퍼지니 我聽此言心惻惻

  풍속 순박 물건 풍성 어느 때에나 기대할꼬 風淳物阜在何時

 

  * 가시나무를 기르는 원예사는 값어치 없는 원예사를 이르는바, 맹자고자 상(告子上), “지금 원예사가 오동나무와 가래나무를 버리고 가시나무를 기른다면 값어치 없는 원예사가 되는 것이다.今有場師 舍其梧檟 養其樲棘 則爲賤場師焉하였으므로, 좋은 유자나무가 없음을 기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