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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巧奴의 죽음

검하객 2021. 3. 29. 09:58

  대단한 두께와 편집을 자랑하는데 건질 게 하나도 없는 책이 수두룩한 반면, 초라한 조각글에 산악과 대해의 무게가 담겨 있기도 하다.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李巧奴爲誰而死>란 논문을 읽었다. 분량은 두 쪽에 불과했고, 편집 상태도 조야하여 별 기대를 안 했는데, 그게 아니다. 필자는 狄馬인데, 찾아보니 69년생 작가이다. 각설, 이교노는 수호전에 나오는 남경의 기녀이며, 의원 安道全의 여친이다. 大名府 싸움 도중 송강에게 등창이 발병했다. 張順은 의원 안도전을 데려오기 위해 남경에 급파된다. 안도전은 굳이 양산박에 갈 이유가 없었고, 여친 이교노도 힘주어 말렸다. 이에 장순은 이교노 포함 네 사람을 죽이고, 피로 벽에 "殺人者, 安道全也."라고 쓴다. 안도전은 할 수 없이 장순을 따라 양산박으로 향한다. 필자는 송강 한 사람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나머지 누구라도 서슴없이 희생시키고, 일말의 망설임이나 미안함을 보이지 않는 행태에 분개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심층 심리에 있어, 宋江과 徽宗 사이에는 아무런 구분이 없다. 송강은 아직 목적을 이루지 못한 휘종이고, 휘종은 목적을 달성한 송강이다. 大宋은 확대된 梁山이고, 양산은 축소된 대송이다.

 

  어떤 사람은 양산박을 옹호하여 말한다. "공업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일부 사용된 비정상적인 수단일 뿐이다. 만약 그들이 천하를 안정시켰다면, 아마 백성을 사랑하는 仁義의 정치를 펼쳤을 것이다." 이에 필자는 다시 말한다. 

 

  중국인의 2천 년 역사와 20여 왕조를 거치는 동안, 대략 100代 사람의 생명을 시험했는데, 이 긴 세월 동안 그런 가설을 입증하는 증명하는 사례는 하나도 없다. 비열한 수단으로 고상한 목적을 이룬 경우도 없고, 과정이 어두운데 빛나는 결과를 낸 사례도 없다. 가시덤불에서는 포도가 열리지 않고, 납가새에 우유나 꿀이 흐르지 않는다.  좋은 나무에 썩은 과일이 열리고, 썩은 나무에 좋은 과일이 달릴 수가 있는가. 이것이 양산의 사례가 우리들에게 주는 계시이다. 

  中國人用兩千多年的時間, 二十多个朝代的輪回, 大約一百代人的生命試驗過了, 沒有一段較長的歷史證明這種假說是正確的. 不存在手段卑下的高尙目的, 也不存在過程黑暗的光明結局. 荊棘上結不出葡萄, 蒺藜里流不出奶與密. 好樹郁有可能結壞果子, 壞樹豈能結出好果? 這就是梁山之類給我們的啓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