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래암의 옛 풍경
1702년 11월 삼연 김창흡은 막내아들 후겸(厚謙)의 초례(醮禮)를 위해 회덕을 찾았다. 신부는 송시열의 증손 송일원(宋一源, 1664~1712, 伯純)의 6녀였다. 당시 삼연은 송요화(宋堯和, 1782~1760)의 부탁을 받고 「비래간각에서 삼가 판상의 시에 차운하다 飛來澗閣 謹次板上韻」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는데, 제목 아래 그 경위를 설명해놓았다.
비래의 승경이 오묘하다. 바위의 가파름과 골짝의 그윽함, 폭포의 시원함이 조약돌 · 꼬마 소나무 · 고갯마루의 구름 · 들판의 빛깔 등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치를 자아낸다. 하지만 너희들만 아름다운 게 아니고, 선현께서 거니신 자취가 또한 귀한 것이다. 그 중 푸른 절벽에 새겨진 네 개의 큰 글자(物外超然)와 5언 시 紗籠은 동춘당(1606~1672) 선생의 묵적으로 인문을 빛내고 있으니 산수에 광채를 더하기에 충분하다. 누각 하나가 시내를 걸터앉아 있는데 8개의 기둥이 날아갈 듯하다. 玉溜라 이름하였으니 시의 고운 말을 가져온 것이다. 팔분체 편액 글씨는 아, 우리 백부 谷雲 선생의 솜씨이다. 이리저리 거닐며 누각의 글씨를 보다가 시내의 물을 움켜쥐기도 하면서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이에 누각 동쪽의 작은 방에 묵었다. 밤이 되자 은하수는 눈부신데 솔과 대는 고요하다. 샘물이 잠자리 사이에 있어 솟아나 흐르는 소리가 밤이 깊을수록 또랑또랑하다. 자리를 함께 한 宋堯和 군은 선생의 증손이다. 이곳에서 그와 함께 하는 사연이 기이하고 마음은 똑 들어맞는 듯 시원하기에 아무 말도 아니 할 수 없는 데, 마침 송군이 판상의 시에 화운하기를 권한다. 하여 서툰 솜씨를 헤아리지 않고 시에 차운하여 보고 느낀 바를 펼쳐 보일 뿐이다.
바위는 장서각을 끌어안았고 石擁藏書閣
소나무는 탄서대 받쳐주누나 松扶嘆逝臺
사문의 자취 남은 언덕과 골짝 斯文一丘壑
다니시던 길 위엔 이끼 덮였네 故道半莓苔
밤기운은 구름 눈으로 일고 夜氣生雲雪
샘물소리 땅에서 울리는 우레 泉聲應地雷
성현들 봄옷 모임 품고만 있다 懷哉春服會
이제서야 비로소 찾아왔노라 遲暮我方來
이 시의 원운은 『同春堂集』 권 24, 「次金沃川 壽昌 飛來菴韻 丙午」(1666년, 동춘당 61세)로, 김수창(1599~1680)의 시에 차운한 것이다. 원문만 올려놓는다.
良友隨緣至
扶筇共上臺
層巖飛玉溜
積雨洗蒼苔
語軟情如漆
吟高氣若雷
天行元有復
七日更朋來
滄丘之約, 秋以爲期, 故末句及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