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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伏)날과 처서(處暑)

검하객 2021. 8. 16. 10:10

  이제 뜨거운 날이 떠나가고 있다. 여름 내 밤이면 종종 어머니 집 옥상 평상 위에 앉아 별을 보며 한참을 앉았다. 할 이야기가 없으면 침묵하는 채로, 옛 화제가 나오면 수백 번도 더 했을 이야기를 되풀이하며, 때론 나 혼자 술을 홀짝이면서. 날이 워낙 더우니 날씨 탄식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 입에선 "말복 지나면 바람이 선선해진다."와 "처서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이 자동으로 나왔다. 두 속담의 의미를 따지면 말복이 조금 먼저 오는 게 순서인 듯하다. 양력 환산 올해 말복은 8월 10일이고, 처서는 23일이다. 속담대로 말복 무렵부터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아마 처서쯤 되면 한데 잠자던 모기 입이 돌아갈 만큼 공기가 찰 듯하다. 

 

   복날은 삼복(三伏)을 가리키는데, 보통 열흘 간격으로 있으며 월력에 따라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이 되기도 한다. 한여름 가장 무더운 20일을 뜻한다. 복날의 의미에 대해 한국에선 개(고기) 관련 설이 많은데, 문헌상 복날이 시작된 중국 진나라에 개고기 먹는 풍속이 없었으니, 한국에서 형성된 의미이다. 伏날의 기원은 伏祭(겨울엔 동지에 지내는 臘祭)로 추정된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즉 음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날이면서, 양의 기운이 생동하기 시작하는 날이다. 복날은 그 반대로 양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시기이다. 따라서 그 원래의 의미는 "陰의 기운이 양의 기운에 쫓겨 숨는[藏伏] 날"이라는 해석이 근사하다. 물론 그 시기는 개도 헐떡거리며 주인 발치에 엎드려 정신 못차리는, 한국에선 그 개를 잡아 영양을 보충하던 계절이기도 하다. 개를 잡아먹는 풍속은 이제 사라져가고 있다. 

 

   處暑에서 '處'는 '그친다[止]'는 뜻을 지닌다. 처서는 말 그대로 더위가 그치는 날인 셈이다. 처서가 오려면 아직 1주일이나 남았는데, 새벽에 찬 기운이 느껴져 이불을 덮어쓰게 된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가을의 기운이 물씬 풍겨온다. 55번이나 계절의 변화를 겪었으니 달력보다 몸이 먼저 그것을 지각하는 것이다. 더위가 물러가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동시에 속절없이 가는 세월이 왠지 서럽기도 하다. 우리 삶이란 이러나 저러나 비슷한 자리를 맴돌다가 소멸한다. 똑같은 계절, 비슷한 상황과 마음을 그토록 여러 버 되풀이하였으니 이젠 달관할 법도 한데, 달관은 허무의 주머니로만 몰려가고 미숙함은 늘 새것처럼 다가와 상채기를 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