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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여행

검하객 2021. 11. 29. 10:57

  밤새 평양시내에 있었다. 난 어떤 일인가로 평양을 방문했고, 호텔에 있다가 능라도운동장 행사에 초대되었다. 저쪽에서 키가 큰 주자유가 경보 준비를 하고 있다. 북경에 있는 주자유가 왜 여기에 있지? 손을 흔들었더니 대뜸 알아본다. 우린 만나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모두 붉은색 목도리를 길게 두르고 있다. 행사에 참여하는, 또는 조직에 대한 어떤 충성의 표시라고 한다. 행사 시작 시각을 물어보니 오후 3시라는데, 아직 1시밖에 안 되었다.  "저게 금수산이고, 대동강은 이쪽에 있지요?" 평양 지리를 매우 잘 안다고 했다. "난 매일 평양 지도를 보며 살아요."라고 대답했다. 2시간 동안 뭘 하지? 운동장 밖으로 나가 오른쪽 담을 넘었다. 인가들이 있고, 꽤 높은 둑을 타고 북쪽으로 이동했다. 조금 두렵긴 했다. 부벽루가 보인다. 그런데 그 형태가 사진에서 본 거랑은 다르다. 저 아래로 대동강이 흐른다. 부벽루 안쪽에 영명사가 있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어 감히 가지를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사진이나 지도에서 본 바로 부벽루는 대동강 가에 있지만, 보니 강쪽으로 들어가 길게 제방을 쌓아 약간의 거리가 생겼다. 골목길을 사람들 사이로 내려왔다. 사람들의 복장, 인상, 대화가 가물가물하다. 그 와중에 신발 한짝을 잃었다. 호텔 객실에서 신는 얇은 슬리퍼로,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지급된 물품이기도 하고, 표식이기도 하다. 할 수 없이 운동화를 신었다. 능라도 경기장 경내로 들어와 살짝 안으로 들어가는데 누가 총을 겨누며 멈추라고 한다. 실내화를 신지 않은 게 발각된 것이다. 두 손을 들고, 다가온 그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나에게 총을 겨우며 기마자세를 하라고 한 뒤 킬킬거리며 사라졌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난 다시 그 자리를 떠났다. 인파를 지나며 몇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중에 홍명희처럼 생긴 사람도 있었던 듯하다. 그들과 꽤나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희미하게 지워져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이 권력 구도 하에서의 생존의 문제였던 거 같다. 운동장 밖으로 나갔다. 어떤 젊은 여성이 선글라스를 끼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 뒤로 간다. 그녀에게 다가갔다. 앞에는 아파트 단지가, 평양시내가 펼쳐져 있다. 그녀에게 저쪽으로 건너갈 수 있는 길을 알려달라고 했다.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 같다. 무안한 마음으로 길을 찾았더니 웬 걸 길, 바리게이트 사이 사이 아파트 진입로를 찾기가 쉬웠다. 괜히 물어봤는 걸,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