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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삶이 흔들린다면 , 致虛, 守靜

검하객 2022. 9. 17. 15:10

  그건 많은 경우 '비교' 때문이다. 자기 생각에서 후회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하여 어떤 결과를 냈을 때, 다른 곳을 보지 않으면 평온이 깨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음의 준비 없는 상태에서 불현듯 다른 이의 다른 성취에 눈이 닿는 순간 많은 것이 무너진다. 자신이 초라하고 하찮으며 무능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 조금 머물게 되면 우울해진다. 이런 사람에게는 원래부터 남들과 자신을 견주어 성취를 따지는 성향이 있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의 안에서는 人相과 我相의 소리 없는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이 환영 때문에 사람들은 남들을 지배하려 하고, 남들에게서 패배감을 맛본다. 르 귄의 글을 읽다가 인용된 도덕경 16장에서 생각이 멎었다. 

   致虛極, 守靜篤. 다 비우고, 푹 고요해라. 그렇지! 들끓는 (남들보다 빛나려는) 욕망과 탐심을 비우고, 요란한 비교와 경쟁쟁을 가라앉히라는 말이겠다. 萬物幷作, 吾以觀其復. 만물이 일어나는데,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살핀다. 아 아무리 무성하고 화려해도 결국은 시들어 사라진다. 歸根曰靜, 是謂復命. 잎이 뿌리로 돌아감을 靜이라 하고, 또 復命이라 한다. '靜'이란 '물리적 소리가 없는 상태'라기보단,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만물의 법칙을 통찰했을 때 생기는 '심리의 고요함과 잔잔함'을 뜻이다. 復命曰常, 知常曰明. 靜 = 復命 = 常이며, 이 공식을 아는 걸 '明'이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통상 진보와 발전과 성장을 추구하며 이를 '明'이라고 한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감, 뒤로 물러나며, 어둡고 낮은 곳에 처하는 건 실패와 퇴보로 낙인 찍힌다. 이 시스템에 길들면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몸에 낙인을 찍는다. '나태', '불성실', '무능', '무책임', '비효율', '비생산', '패배'. 아! 知常容, 容乃公.  靜 = 復命 = 常을 알게 되면 모든 걸 그 상태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 걸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는 내면 속 '나'와 '너'와 '그'의 비교와 경쟁이 사라진다. 그 상태를 '公'이라 한다.  다 비우고 고요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