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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붙이면 활물이고 버려두면 사물이다
검하객
2022. 9. 17. 20:49
허벅지에 약간의 이상이 느껴져 오후 운동(축구)을 포기하고 가벼운 산행을 선택했다. 가방에 읽던 책 [세상 끝에서 춤추다](르 귄) 한 권, 쓰레기 줍기 용 비닐봉투 하나, 손수건, 목장갑 하나를 넣고 앞산으로 향했다. 오르기 시작한 지 10분 만에 땀이 뚝뚝 떨어진다. 오랜만에 소나무가 있는 곳까지 갔다. 산 중턱 평평한 곳에 두어 가지 운동 시설과 의자가 있는데, 여기 우산 모양의 적송 한 그루가 서있다. 나이는 나 정도 되었으려나. 언젠가부터 여기 가면 이 나무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 이 나무가 그냥 나무로 여겨지지 않아 발길이 뜸해졌다. 나무라도 말을 붙이면 생명이요 활물이요 영체이지만, 사람이라도 버려두면 그저 사물이요 몸뚱이요 벽돌에 지나지 않는다. 그 동안 여기 발길이 가지 않았던 이유를 알겠다. 아예 이름도 지어주기로 했다. 이 소나무는 장주요, 그 둘레 참나무들은 설결이고, 왕예이고, 장오자이며, 지리자겠다. 세상 어느것에라도 말을 붙여보라, 몸을 꿈틀거리며 반응을 보이리라. 정령이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