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 방으로 갈 수 있는 방법 (최인훈, 서유기)
에릭슨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내곤 했다. "이 상담실에서 건너편에 있는 방으로 갈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보세요." 제자들은 보통 걸어가는 방법을 좀 더 다양화 한 답, --- 등을 말했다. 에릭슨은 이 방을 나가서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건너편 방으로 들어가기, --- 등을 덧붙이곤 했다.
이윤주, 양정국 공저, 밀턴 에릭슨 상담의 핵심 은유와 최면, 학지사, 2010, 28쪽.
에릭슨의 답변에서 최인훈의 [서유기](1966,7)가 떠올랐다. [서유기]는 아래 문장으로 시작한다.
"독고준이 이유정의 방을 나설 때 괘종 시계가 두시를 쳤다. 두 낱의 소리는 독고준이 도어를 막 닫으려 할 즈음에 울리기 비롯하였기 때문에 그 가운데 하나는 닫힌 도어의 저편에 - 방 속에 남고 나머지 하나만이 복도를 따라나왔다. 그는 자기 방 쪽으로 걸어갔다."
[서유기]는 아래 문장으로 끝난다.
"그는 뒷손으로 문을 닫고 자기 침대에 가 걸터앉았다. 나는 무엇인가를 어겼다고 그는 취한 머릿속에서 생각했다. 누군가를 배신했다고 생각한다. 누구를? 이유정은 자기가 들어간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는 온몸이 모닥불이 된 것처럼 부끄러웠다. 나는 왜 그 방에서, 문간에 얼어붙은 것처럼 섰다가 그대로 물러나왔는가? 그는 일어서서 창문 앞에 섰다. 지척지척 내리는 무거운 비. 독고준은 그 흠씬 젖어 있을 보이지 않는 방을 유리창 너머로 내다보았다."
[서유기]의 시간은 비 내리는 밤 새벽 두 시, 독고준이 이유정의 방문을 열었다가 들어가지 않고 물러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가기까지이다. 이유정은 누구이고, 독고준은 왜 깊은 밤 그 방에 들어가려고 했을까? 왜 돌아나왔고, 부끄러웠을까? 이유정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다. [서유기]의 서사 출발 전에 아래의 제사가 있다.
"想念의 走馬燈을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밟으면서 그는 이층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서유기]는 1층 이유정의 방문에서 2층 자기 방으로 들어가기까지에 일어난 독고준 想念의 세계이다. 최인훈은 본능적으로 옛날 [서유기]를 잘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