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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박새
검하객
2023. 2. 1. 16:16
아파트 정원에서. 연두빛 날개, 눈가의 흰 테두리.
나무들의 키와 윤곽으로 미루어 삼나무 숲을 지나고 있는 듯했다. 지난해 가을, 목작업을 한느 인선을 두고 정류장까지 산책 나왔다 돌아가는 길이면 키 큰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천이 스치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내가 느끼기에 이 섬의 바람은 마치 배음처럼 언제나 깔려 있는 무엇이었다. 거세게 몰아치든 온화하게 나무를 쓸고 가든, 드물게 침묵할 때조차 그것의 존재가 느껴졌다. 특히 침엽수들과 아열대 활엽수들이 섞여 자라는 구간에서는, 수종에 따라 다른 속도와 리듬으로 가지와 잎사귀들 사이를 통과하며 형용 못할 화음을 만들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동백 잎사귀들이 매 순간 각도를 바꾸며 햇빛을 되쏘았다. 삼나무 줄기를 타고 까마득한 높이까지 감겨 올라간 단풍마 덩굴이 그넷줄처럼 흔들거렸다. 어디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는 동박새들이 신호를 주고받든 번갈아 울었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129, 1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