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 Machine (1895)의 1931년 서문
Wells(1866~1946)는 1895년(30세)에 이 소설을 발표했고, 1931년(66세)에 이 책에 서문을 붙였다. 이 글에서1895년의 자신을 '그'라고 지칭한 것이 발랄하고 경쾌하다. 어떻게든 평범한 글은 쓰지 않으려 했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아래는 첫 단락, 창작 시기에 대한 회고이다. (번역은 김석회, 열린책들, 2013)
그는 어느 여름 밤늦게 열린 창문 옆에서 이 작품을 썼는데, 그때 창밖에서는 무뚝뚝한 하숙집 여주인이 그가 램프 기름을 너무 많이 쓴다고 어둠 속에서 투덜거렸으며, (등잔이 타고 있는 동안 잠들지 못하는 그녀의 곤혹스러움을 꿈 세계에 펼쳐냈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여주인의 투덜거림을 반주 삼아 글을 썼다. 그는 또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공원을 거닐면서 작품에 대해, 작품에 대해, 주요 개념에 대해 토론한 일도 기억하고 있다. 웰스가 몇 년 동안 부실한 식사에 시달리면서, 희망은 있었지만 불확실하고 위태로운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 친구는 그를 단단히 떠받쳐주었다.
He remembers ① writing at it late one summer night by an open window, while a disagreeable landlady grumbled at him in the darkness outside because of the excessive use of her lamp, (② expanding to a dreaming world her unwillingness to go to bed while that lamp was still alight) ; he wrote on to that accompaniment; and he remembers, too, ③ discussing it and the underlying notions of it, while he walked in Knole Park with that dear companion who sustained him so stoutly through those adventurous years of short commons and hopeful uncertainty.
하숙집 여주인의 불평을 반주(伴奏) 삼아 지었다는 말이 재밌다. 이 시기 웰스의 마음을 떠받쳐준 친구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괄호 밑줄 부분은 아마 없어도 좋다고 판단해서 번역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래는 다섯째 단락, 미래 인류가 지상의 Morlock과 지하의 Eloi 두 종족으로 분화된다는 설정에 대한 설명이다.
인류가 사회적으로 엘로이와 몰록으로 분화한다는 생각은 이제 그에게는 미숙하지 않게 느껴진다. 작가는 청소년 시절에 Jonathan Swift(1667~1745)에게 매료되었고, 인간의 미래에 대한 이 비관적 묘사는 이와 비슷한 작품인 「모로 박사의 섬」과 마찬가지로 그가 크게 빚을 지고 있는 스승 스위프트에게 바치는 설익은 공물이다.
The idea of a social differentiation of mankind into Eloi and Morlocks strikes him now as more than a little(상당히, 적잖이) crude. In his adolescence Swift had exercised a tremendous fascination upon him and the naive pessimism of this picture of the human future is, like the kindred Island of Dr Moreau, a clumsy tribute to a master to whom he owes an enormous debt.
첫번째 문장은 번역이 이상하다. more than a little에 대한 사전의 설명 '상당히', '적잖이'가 맞다면, "이제는 미숙하게 느껴진다."가 되어야 할 듯하다. 번역자는 영어 능통자이고 나는 미숙자이니, 아무래도 내가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웰스는 스위프트를 자기 스승이라고 했으며, 이 작품을 스승에게 헌정한다고 했다. 아, 아무런 걸림 없이 따를 수 있는 스승이 있다는 건 세상 살이에 얼마나 마음 든든한 것인가! 거꾸로 우린 마음을 든든하게 하기 위해 스승을 찾고, 따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 걸리버 여행기(1726) - 원제는 『세계의 여러 외딴 나라로의 여행기. 네 개의 이야기』(Travels into Several Remote Nations of the World. In Four Parts)이다. 줄여 『걸리버의 여행』 (Gulliver's Travels)이라고 한다. 저자는 “처음엔 외과 의사, 다음엔 여러 척의 배의 선장이 된 레뮤엘 걸리버”로 표기되었다. ( By Lemuel Gulliver, First a Surgeon, and then a Captain of Several Ships)
* The Island of Doctor Moreau는 웰스의 SF(1896)이다. 서술자는 구조된 난파선 선원 Edward Prendick이다. 그는 Moreau 박사의 섬 집에 머물렀다. Moreau는 생체 해부로 동물로부터 인간과 비슷한 잡종 생명을 만드는 미친 과학자이다. 고통, 잔혹성, 도덕 책임, 인간 정체성, 자연에 인간의 영향력, 트라우마 후유증 등의 여러 주제를 다룬다. Wells는 이를 "청년기 신성모독 연습 an exercise in youthful blasphemy"이라고 했다. 더 진화된 종족이 동물 종의 진화에 개입하여 더 높은 수준의 지능을 가지게 한다는 uplift 모티프를 가장 먼저 다룬 작품이다. (위키피디아)
사람이 성장하려면 잘못을 저질러야만 하고, 작가는 이 젊은 시절의 노력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 그는 시간 차원을 따라 36년 전에 살았던 그 가난하고 쾌활한 그의 동명이인을 회고하면서 그에 대한 찬사를 한두 마디 보태게 된 것을 무척 기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One must err to grow and the writer feels no remorse for this youthful effort. … He has long since given up the practice of writing prefaces for books, but this is an exceptional occasion and he is very proud and happy to say a word or so of reminiscence and friendly commendation for that needy and cheerful namesake of his, who lived back along the time dimension, six-and-thirty years ago.
그렇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실수와 실패 없이, 경로 이탈과 길 잃음 없이 목표에 도달하는 건, 그저 공간의 수평 이동에 지나지 않는다. 젊은 시절의 자신을 회고하고, 일컫는 말투가 꽤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