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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연
검하객
2024. 5. 18. 10:55
봉란(鳳卵)
인연이란 게 다 그렇거니와 그와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종종 들러 차 한 잔을 마시고 가는데,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다. 어떤 땐 토마토며 옥수수며 감자 등이 발자국처럼 남아있기도 하다. 경기도 끝자락 어디 산골의 무슨 공동체에 산다는데, 들어보면 상좌(上佐)도 아니요, 신자도 아니요, 식객도 아니며, 집사는 더더욱 아닌데, 그 모든 걸 겸하고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또 어디 기자라고도 하는데 얽매여 보이지 않고, 한국어 연구자인데 집착도 내려놓은 거같다. 엊그제 오랜만에 다녀갔는데, 산나물 내음에 바람이 온몸을 감싸고 있다. 도심(道心)이 깊어진 느낌입니다, 했더니 간 배지 않은 미소로 화답한다. 그렇게 차 한 잔을 마시더니 일어서 문을 나서는데, 석장 짚고 돌아서는 산승의 뒷모습 너머로 금강산이 펼쳐져 있다. 그 사이 ‘표연(飄然)’ 두 글자가 운무인 듯 아른거린다. 탁자 위에 아홉 개 알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기에, 아홉 칸(干)이 내려오셨나 하며 그중 한 알을 손바닥 위에 놓고 보다가 깜짝 놀랐다, 봉란(鳳卵) 아닌가! 하늘 높은 곳에서 날갯짓 소리가 멀어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