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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의 환상
검하객
2024. 5. 18. 11:38
설화(雪花)가 자기 동생이라며 작은 수련 화분 하나를 놓아주었다. 이제 싹이 트고 잎이 자라 꽃이 핀다는 말에, 방은 금세 고요한 호수가 되었다. 물결 위에 붉은 석양이 반짝인다. 책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거기서 나온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나무의자에 앉아 글을 쓴다. 다리 위에서 어떤 이는 이젤을 세워 그림을 그리고, 저쪽에선 한 어깨를 드러낸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커피 향이 은은하다. 수면 위에는 한 소녀가 작은 배를 노저어 오는데, 그 표정과 자태에 긴 여행을 마친 사람처럼 기품이 넘친다. 내가 손을 흔들어 인사하니, 잠시 배를 멈추고 가볍게 목례하는데, 그 사이로 실잠자리가 날아간다. 황후를 만난 것이다. 호수는 넓고 깊어 고래가 살 수 있을 것만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