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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삼연단상(讀三淵斷想) 5, 알을 품은 어미 닭의 고요함
검하객
2024. 9. 11. 12:15
「갈역잡영」은 66세 여름 두어 달 갈역에 머물며 지은 386수의 연작시이다. 5언절구와 7언절구가 똑같이 193수이다. 이 시들은 갈역 일대를 온통 시로 물들였다. 아침저녁으로 눈에 드는 풍경들, 역사의 사건들, 지배층의 모순, 사회제도의 문제, 우주의 이치 등, 떠오르는 건 모두 시가 되었다. 이런 시경(詩境)도 있다.
알 품은 닭 능히 고요하여서 抱卵雞能靜
순간도 눈동자를 굴리지 않네 曾無轉睛時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다면 人能專若此
틀림없이 도를 한 데 모으리 凝道定無疑
닭장에서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고요할 수가 없다. 온 기운과 정성을 모으니 눈동자조차도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도 저렇게 한 가지에 고요히 집중할 수 있다면, 도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겠지, 이런 말이다. 유난히 학위논문 쓰기에 난경을 겪는 친구가 있어 이 시를 보내주고 말했다. 호를 학계자(學鷄子), 아님 포란선생(抱卵先生)으로 바꾸면 어떨까! 알 품은 닭의 고요한 힘으로 이번 가을엔 묵은 일을 끝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