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삼연단상(讀三淵斷想) 6, 혼자 된 딸을 그리는 부정
삼연은 16살에 혼인했다. 부인은 이세장의 따님으로 백사 이항복의 후손이다. 두 딸과 세 아들을 두었다. 딸에 대한 정보는 자세하지 않다. 맏아들 양겸(養謙)이 삼연이 23살 때에 태어났으니, 두 딸은 그 전에 태어난 듯하다. 큰딸은 해평 윤세량(尹世亮)에게 출가했다. 불행히도 윤세량은 1697년 일찍 죽었고, (결과로만 보면) 둘 사이에선 자녀가 없었다. 이듬해엔 윤세량의 부친 윤평(尹坪)이 죽었다. 삼연은 사위 죽음에 대해선 제문 한 편 외에 어떤 심경도 글로 남기지 않았다. 아마 필설로는 그 참혹함을 표현하기 어려워 말을 잊었던 게 아닐까!
이듬해 윤평이 죽었을 때는 제문 외에 7편의 만시를 지었는데, 여기 혼자 된 딸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남은 가연 한 올의 실뿐이거니 嘉緣殘一線
혼자 된 딸아이가 눈앞에 있네 孀女目前留 (권 6, 「尹僉正坪挽」)
다른 시에 보이는 과곡(寡鵠), 상녀(孀女)는 혼자 된 딸을 가리킨다. 남은 자료로만 판단할 때 삼연의 딸에 대한 표현은 매우 인색했다. 그런데 이 큰딸에 대한 마음이 은은하게 배어나는 시 한 수가 있다. 아래는 59세(1711) 설악산에서 지은 「앞 시의 운을 거듭 쓰다, 又疊前韻」 ((앞 시는 「百淵雜詠, 和東郊諸絶」, 권 10)의 열 다섯 번째 시이다. 이 시 끝에는 ‘長女’라고 적어 큰딸을 떠올리며 지은 것임을 표시하였다.
찬 규방 한 그림자 잠들지 못하겠지 弔影寒閨卧不成
백 년의 마음 일은 두어 점 풍경 소리 百年心事數鐘聲
산골의 이 아비는 창자가 무디지만 巖阿有父頑腸肚
편지가 올 때마다 눈물을 떨군다네 每得來書淚輒傾 長女
첫 구는 고독감에 사로잡혀 잠 이루지 못할 혼자 된 딸의 처지를 떠올렸다. 둘째 구의 스산한 두어 점 풍경 소리는 딸의 마음으로 보아도 되고, 시인의 마음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기승전결의 구법을 적용하면 전자가 자연스럽다. 셋째 구는 그런 딸의 처지는 아랑곳없이 설악산에 묻혀 있는 자기 무심함에 대한 자책이다. 결구의 편지는, 그 혼자 된 딸이 부쳐온 것이겠다. 편지엔 무슨 말을 담았을까? 한글 편지였겠지! 삼연은 딸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눈물을 떨구었다. 아, 이 시 앞에서 난 한참 말을 잊었다. 이 세상의 사연들 앞에서 언어는 얼마나 무력하고 인색한가!
삼연의 사위였던 윤세량에 대해 찾아보았더니, 윤평(尹坪)의 아들로 나온다. 그런데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홈페이지에 소개된 윤평의 생년은 1600년이다. 삼연의 할아버지 뻘이다. 이에 따르면 윤평은 1698년 99세까지 살았고, 윤세량은 70세 무렵에 본 아들이 된다. 이 정보가 잘 못 되었거나, 아님 동명의 이인이거나. 부자의 이름이 똑같기가 쉽지 않은데, 아무튼 확인을 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