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재앙인 인간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안창호는 인사청문회에서 진화론을 부정하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해 화제가 되었다. 이런 발언은 한국의 지적 수준을 400년 전 갈릴레이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과도 같다. 갈릴레이의 후예로 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현실이 무척이나 참담하다. 지난 문재인 정권 초기에도 창조신앙을 신봉했던 장관 후보자가 사퇴한 경우가 있었다. 그는 진화론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나 결국 낙마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이었으나 창조론을 옹호하는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과학기술인들의 입장에 힘을 보탰었다.
안창호 위원장의 더 큰 문제는 고위공직자로서 특정 종교의 교리를 공교육이라는 가장 공적인 영역에 끌어들이려 한다는 점이다. 개인으로서야 얼마든지 종교와 신앙을 가질 수 있고 특정한 과학적 사실을 거부할 수도 있다. 나의 훌륭한 동료 과학자들 중에는 매우 신실한 신앙을 가진 분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신앙과 종교적인 율법이 속세의 공적인 활동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무너진다. 아직도 제정일치를 유지하는 몇몇 나라가 종교의 족쇄로 국민들을 옥죄는 모습을 우리는 여전히 목격하고 있다. 다른 공직도 아니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이끌 사람이 특정 종교에 편향된 시각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을 넘어 아예 공적 체계 안으로 유입한다면 과연 국민의 인권이 불편부당하게 지켜질 수 있을까? 당장 성소수자 등의 인권이 보호받지 못할 가능성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만약 국가기관이나 공권력이 특정 종교의 교리에 따라 움직인다면, 최첨단의 인공지능 기술이 세상을 급변시키고 있는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이 가장 생존 경쟁력이 없는 해괴한 변이국가로 돌변해 재빨리 도태될 것이 분명하다.
이종필, [한국의 지적 수준을 ‘갈릴레이 이전’으로 400년 후퇴시킨 공직자] (경향신문, 9. 18)
이런 인간은 존재가 사회의 재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