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팔랑마을, 팔랑치!
팔랑치는 남원과 함양 사이의 고개이다.
호남여행을 마친 김시습은 28살이던 1462년 가을 어느 날 팔랑치를 넘어 경상도 땅 함양으로 갔다.
25세이던 1459년 가을 영월에서 호남 유람을 시작했다.
첫 여정은 대략 청주 – 논산 – 완주 – 김제 – 정읍 - (노령) - 장성이다.
완주 삼례에서는 길 위의 삶을 탄식했다.
정읍에서 노령을 넘어 장성으로 향하면서 호남의 승경에 대한 기대로 설렜다.
반생을 어느 때나 길로 집 삼았으니 半生長以路爲家
천만의 내와 뫼가 눈 아래 넘치누나 萬水千山眼底賖 「완주 삼례역에서 묵으며, 宿參禮驛」
이로부터 호남에서 승경을 찾으리니 從此湖南探勝景
울타리서 익어가는 유자도 실컷 보리 剩看籬落橘橙黃 「노령을 넘는데 해가 저물다, 踰蘆峴, 日暮」
이후 동선은 분명치 않다.
나주, 광주, 영광, 순천 등지를 다녔으며, 완주 김제 정읍, 송광사, 장성, 부안, 전주에서 오래 머문 것으로 보인다.
남원 광한루에서는 달나라 항아(姮娥) 같은 여인이 피리 부는 모습에 취했다.
아마 이 장면에서 춘향전이 배태되었을지 모른다.
만 4년을 호남 땅에서 머문 셈이다.
김시습은 팔라현(八螺峴)이라 썼다.
조선시대에는 八羅峴, 팔량현(八良峴), 팔량치(八良峙) 등으로 표기되었다.
뒷날 이 고개에 꼭 올라봐야지 한 지 꼭 10년이 지났다.
오후 채널을 돌리다 2017년 2월에 방영된 인간극장 - 채옥씨의 지리산연가를 보았다.
불행하고 힘겨운 인생이었지만, 유쾌하고 진취적으로 사는 채옥 씨(여성, 당시 74세)의 사연이 재밌다. 다녀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손 모아 빌면서 안전을 기원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주인공 채옥 씨가 사는 곳이 남원군 산내면 팔랑마을이다.
이 안에 채옥 씨가 팔랑치에 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팔랑마을에서 팔랑치를 넘어 함양 땅으로 이어지는 옛길을 걷는 것은 내게 주어진 거룩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