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讀大地,

검하객 2013. 6. 29. 00:18

 

大地 (1931)

펄벅(1892~1971) / 장왕록 옮김, 삼중당, 1982

 

  지금은 사라진 삼중당문고의 51번째 책이다. 가격은 700원. 아마 대학 1학년 즈음에 산 책일 듯하다. 누런 종이에 세로 조판, 글씨는 깨알만하고 낙장도 많지만 난 이 책이 좋다. 원문과 대조해보지는 않았지만 번역도 훌륭하다. 문학에 외형이 있다면 아마 이와 가까울 것이다. 30년 전에도 재미있었고, 2년 전에도 흥미진진했다. 2년이나 지났지만 복기하는 의미에서 간단하게라도 정리해둔다.

  제목 없이 모두 3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기, 장소, 이름 등 역사(또는 사실) 표지는 최소화되어 있다. 사건의 배경은 주로 안휘성 어디쯤이다. 남경이나 상해로 추정되는 남방의 도시가 나온다. 부잣집 탈취 사건이나 북쪽에서의 전쟁 등도 역사 사건으로 추정 가능하지만 분명치 않다. 왕룽(王龍)과 오란(阿蘭) 부부를 제외하면 이름을 지닌 사람은 杜鵑이나 蓮花 등이 전부이다. 세상에 좋은 소설이 많지만, 재미난 소설 10권을 꼽으라면 그 중에 넣을 작품이다. 1931년 강용흘의 『초당』과 경합하여 퓰리처상을 받았다.

 

   1. 

  서사는 “왕룽이 장가 들던 날.”이라는 문장으로 출발한다. 왕룽의 설렘. 그의 아버지.

  그는 이런 날이면 언제나 해 온 버릇대로 향을 사서 성황당에 뫼신 지신님 앞에 피우리라 생각하였다.(12)

 왕룽은 성내 황부자집에 아내를 데릴러 갔다. 왕룽의 아내가 될 사람은 산동 출신으로 어려서 황부자집에 팔렸다. “성황당 안엔 그 근처의 흙으로 만든 한 쌍의 거룩한 지  신님을 뫼셨다. 남신과 여신 두 검님이시다. 지신님은 붉고 누런 종이로 지은 옷을 입으시고 그중에도 남신은 엉성하게나마 수염까지 드리웠다. 왕룽의 아버지는 해마다 붉은 종이를 오려서 정성껏 옷을 지어 입히지만 비와 눈이 들이치고 여름엔 햇볕이 내리쬐어 그 고운 옷도 얼마 가지 않았다.” … 한동안 사나이와 여인은 밭 가운데 뫼신 지신님 앞에 가즈런히 서 있었다. (27,8)

 음식을 대접하는 사이 욍양간 옆에 쌓아둔 집단 위에 쓰러져 잠든 오란. 왕룽이 깨우자 매맞는 것을 두려워하듯 손을 들어 머리를 가렸다. (30, → 오란의 종살이 내력) 첫날밤.

 

 2.

 

  신혼 생활. 정이 들자 사람도 좋아졌다. 말 없는 오란. 사랑하게 되니 그의 과거와 경험이 궁금해졌다. 오란의 임신.

  노인은 저녁밥을 짓는다는 말에 너무 좋아서 어린아이와도 같이 부엌에 따라 들어갔다. 손자를 배었다는 통에 저녁밥을 잊어버린 거와 같이 저녁밥이란 말에 손자 생각이 지워져 버렸다. (38)

 

 3.

 

  오란의 황부자집에 대한 분기. 오란의 마음과 다짐. 깊이 숨어 또는 갇혀 있는 오란의 실존. (40) 오란의 출산.

 

4.

 오란의 육아.

 “오란의 흙빛 가슴에선 백설과 같은 흰 젖이 끊임없이 솟아나와서 아기가 한편 젖을 빨면 다른 편 젖에서도 샘솟듯 흘러내렸다. … 어떤 때는 흘러내리는 젖물에 옷을 버리지 않기 위해 가슴을 추슬러 땅 위에 흘려버리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흰 젖이 흙 속에 스며들고 번져서 들 가운데 연하고 검고 푹신푹신한 얼룩을 만들었다.”(48)

 결혼 초의 풍요와 행복.

 

 5. 

 오란의 자부심, 조금씩 몰락해가는 황부자집.

 

 6.

 또 아들을 낳은 오란. 들일하다가 출산하고 다시 밭으로 나와 일하는 오란.

 

7.

 오란의 삼촌과 숙모. 딸을 낳은 오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왕룽.

 

 8.

 땅을 불려가는 왕룽, 몇 달간 이어지는 가뭄, 소도 잡는 오란. 극도의 공포 속에서도 땅에서 위안을 받는 왕룽과 오란.

 

 9.

 계속되는 가뭄. “어떤 날 그는 굶주림에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들 가운데 있는 성황당에 가서 거기 태연하게 여신님과 짝지어 앉아 있는 지신님의 얼굴에 마음껏 침을 뱉아 주었다.”(84) 그 가운데의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오란의 판단과 결행. (91)

 남방으로 떠나면서도 끝내 쇠스랑과 괭이와 호미와 함께 땅을 팔지 않는 왕룽과 오란. (97)

 

 10.

 고향을 떠나 남방으로 향하는 부부. “그들은 잠자코 지신님 앞을 지나갔다. 지신님도 그들을 본체만체했다.”(98)

 

 11.

  남방에서의 생활. 해결사 오란, 움막도 짓는다. “왕룽은 그 움막들을 아무리 눈여겨 보아도 그의 서투른 솜씨론 갈대를 베어를 베어 만든 거적을 매는 게 좀처럼 마음대로 될 것 같지 않아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러는 걸 보고 오란이 불쑥 나서서 말하였다. ‘그건 내가 하지요. 어렸을 때 해본 일이 있어요.’” (106)

  아이들을 데리고 동냥도 하는 오란. “왕룽도 넋을 잃고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디서 이런 시늉을 배웠을까? 이 여자는 자기가 전혀 모르는 별다른 생애를 가졌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란은 그 무언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나는 어릴 때 이렇게 해서 살아간 일이 있어요. 그때 종으로 팔려갔지요.’” (110)

  생명력의 근원, 오란. “큰 아이는 부끄러워서 ‘적선합쇼’ 하고 뇌이면서 킥킥 웃었다. 그걸 본 오란은 아이들을 움막 속에 끌어다가 뺨을 치고 성을 냈다. ‘굶어 죽겠다면서 웃는 놈이 어디 있어. 그래 그게 굶는 시늉이냐?’ 그는 손이 아프도록 아이들의 뺨을 때려 갈겼다. 아이들은 참다못해 울음을 터뜨리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그는 밖으로 내어쫓으면서 말하였다. ‘ 그 우는 꼴이래야 비럭질을 할 수 있을 거야.’ (110)

 

 12.

  남방은 강소성의 한 도시. 도시 빈민노동자의 비참한 삶. 혁명의 기운이 감도는 도시, 세상 물정 모르는 왕룽. 소소한 도둑질에 재미를 붙인 아이들. 개의치 않는 오란. 생존을 위해서라는 윤리는 쓸데없는 치장에 지나지 않는다. 왕룽의 체면과 양심과 자존심. 땅에 떨어진 고기를 줍는 오란.

 

 13.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그걸 먹지 못하고, 옷을 짓는 사람은 그걸 입지 못하는 사회의 모순. 아이를 팔아야 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진 부부. (126) 딸을 팔아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높은 담장의 경계.

 

 14.

  오란의 말없음은 대지와 닮았다. 힘들면 울음을 터뜨리는 왕룽과 달리 오란은 침착하게 방법을 찾는다. 오란과 왕룽에게 찾아온 행운.

 

 15.

  귀향. “왕룽은 들 가운데 뫼신 지신님이 생각나서 성 안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여다보았다. 지신님의 몰골은 말도 못할 형편이었다. 흙으로 만든 몸뚱이가 얼굴서부터 비에 씻기고 종이옷은 찢어져서 발가숭이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흉년에 아무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왕룽은 그 몰골이 고소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섰다가 일을 저지른 아이를 꾸짖는 어조로 언성을 돋우었다. ‘사람을 못 살게 한 지신님은 그 꼴이 마땅하다.’” (153)

 

 16.

 진주 두 알을 원한 오란. “왕룽은 이 우둔하고 충직한 여인이 이때까지 한푼 보수도 없이 남의 집에서 고된 일을 해왔고 또 그 집에선 보석을 차고 있는 여자를 밤낮으로 보면서도 자기는 한번도 그것을 만져보지도 못한 심정을 이해하진 못했으나 그 순간 깊은 감동을 느꼈다.” (157)

 

 17.

 황부자네 땅을 사서 열심히 일하는 왕룽. 이어지는 풍년. “무슨 말을 일러주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곧 자기의 세계로 몰입하였다. 그는 언제나 지나간 날의 꿈에 잠겨 있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고, 옆에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전혀 아는 체하지 않았다.” (178) 고요한 돈강, 태평천하의 노인 형상.

 왕룽은 비로소 아내의 못생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홍수, 일상의 균열, 파탄. 향락에 유혹되는 왕룽의 변화, 양심에 부대끼는 불편한 심사. 찻집 출입.

 

 19.

  오란의 외도, 오란의 직감과 슬픔.

 “이제는 슬픈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고 아무 말도 없었다. 남편이 자기를 잊어버리고 그 소중한 토지까지도 잊어버리고 다른 어떤 곳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떠한 곳인지는 헤아릴 길이 없었다. 그러나 남편이 언젠가 명백하게 자기의 머리카락이며 몸뚱이며 전족하지 않은 발이며 모두가 보기 싫다고 할 때부터 그는 남편이 무서워졌다.” (198)

  “오란은 다시 빨래를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눈물방울이 고요히 그녀의 두 눈에 맺히어 소리 없이 흘러내렸으나 그는 손을 들어 닦으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방망이로 돌 위에 펼친 옷을 더 힘차게 두드릴 뿐이었다.” (199)

 

 20.

 삼촌의 귀환. 왕룽의 짜증, 오란의 눈물. 왕룽의 집에 연화가 들어오다. 오란의 분노.

 “그동안 오란은 집에 가까이 오지 않았다. 새벽녘에 괭이를 메고 어린것들을 데리고 찬밥덩이를 베 헝겊에 싸가지고 나간 채 들어오지 않았다. 어둘 무렵에야 그는 흙투성이가 되고 햇볕에 그을리고 피곤해서 묵묵히 돌아왔다. 아이들도 말없이 그를 따랐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말을 건네지 않고 여느 때와 같이 부엌에 들어가서 밥을 짓고 상을 보살폈다.”(211)

 “오란의 두 눈에서는 마침내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215)

 

 21.

 왕룽의 토지에 대한 신앙의 재생. (224)

 

 22.

 오란과 연화의 역할 분담.

 

 23.

 왕룽의 아들 걱정. 삼촌과 연결되어 있는 화적당과 메뚜기떼의 출현.

 

 24.

 오란의 병증.

 

 25.

 밤마다 딸의 발을 묶는 오란, 울지 않은 딸, 의아한 왕룽.

 “어머니가 울지 못하게 해요. 아버지가 들으면 마음이 약해서 애처롭다고 묶지 말라고 할까봐 그래요. 묶지 않으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거와 같이 저도 나중에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어머니가 그래요.” (262)

 “왕룽은 그날 밤 연화의 옆에 누워도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다. 그는 일어나 앉아서 자기가 지내온 한평생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오란이 그가 접촉한 처음 여자였으며, 또 자기를 도와서 충실하게 일해 나온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몹시 괴로웠다. 또 낮에 딸아이가 하던 말을 생각해 보아도 사뭇 마음이 슬펐다. 오란은 겉으로 영리하지 못할 망정 자기를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은 역시 오란밖에 없다고 깨달았다.”(264)

 의원의 사망 선고. “왕룽은 의원을 따라 나가서 은전 열냥을 내어주고 그 길로 어두운 부엌에 들어갔다. 오란이 그 하구한 많은 세월을 보낸 이 부엌에 다시는 돌아올 실이 없었다. 왕룽은 아무도 보지 않는 벽에 얼굴을 부비며 실컷 울었다. (268) 오란의 죽음, 지친이 떠나가는 것처럼 슬프다!

 

 26.

 병석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오란. “숯을 아끼지 않고 왜 그렇게 헤프게 쓰지요.” 왕룽은 번번이 그 소리를 듣기가 거북해서 어느 자기의 심중을 오란에게 얘기했다. “그런 소리 마오. 난 당신의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토지를 모조리 팔아버려도 좋겠소.” 오란은 남편의 말에 만족한 웃음을 짓고 가쁜 숨을 내쉬면서 말하였다. (271)

이리하여 왕룽은 하루에도 여러 시간 오란의 곁에서 지냈다. 그의 병이 사뭇 침중해서 서로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별로 말이 없던 그들이었다. 오란은 남편의 옆에 잠자코 앉아 있는 사이에도 가끔 정신을 깜빡 잃어서 자기가 어디 있는지도 의식치 못하고 어릴 적 일을 꿈결에 늘어놓았다. 그의 헛소리는 간단한 것이었으나 그래도 왕룽은 생전 처음으로 그의 마음속을 환하게 알 수 있었다. “난 진지를 문 밖에까지만 가져가지요. 난 못생긴 때문에 영감님 앞에 나가질 못해요.” 라든가, “때리지 마세요. 다시는 그것을 안 먹겠습니다.” ㅎ기도 하고 또 자꾸만,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 하기도 하고, “난 내가 못생겨서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잘 압니다.” 라고도 하였다.

 왕룽은 오란의 그러한 헛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어서 그의 크고 거칠고 이제는 거의 죽은 사람의 손과 같은 두 손을 말없이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헛소리가 모두 사실인 것이 왕룽에게는 슬펐고 오란에게 자기의 그러한 심중을 통하게 하려고 아무리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려도 연화가 입술을 한번 쫑긋거리며 애교를 피울 때보다도 가슴에 감동을 느낄 수 없는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의 굳어져 가는 손을 잡아도 그것을 사랑할 수 없고 도리어 자기의 의지에 반하여 측은한 생각이 식어가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272) ⇒ 이제야 오란의 과거, 오란의 깊은 곳을 알게 된 왕룽, 슬프다!

 큰아들의 혼례, 오란의 유언. 며느리에게 시아버지와 시할아버지와 남편과 천치 시누이를 부탁하다. 오란의 자긍심. “나는 아무리 못생겨도 아들을 낳았다. 나는 본시 종년이었지만 이제는 이 집 아이들 어머니다.” 오란의 죽음. “그는 오란이 이가 드러나도록 크게 벌린 자주빛 입술이 보기 흉해서 죽어가는 순간에까지도 그를 사랑할 수 없는 자기 마음이 슬펐다.” (281) ⇒ 죽어가는 순간에도 사랑받지 못한, 불쌍한 오란. 슬프다!

 그래도 관을 묻고 봉분을 쌓아 올리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그는 묵묵히 돌아서서 담교를 먼저 돌려보내고 혼자 걸어서 집으로 향하였다. 그의 가지가지 슬픈 생각 중에도 그는 어느 날 오란이 못 가에서 빨래할 때 그가 가진 진주 두 개를 억지로 받아오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유연히 가슴에 솟아올랐다. 그 진주를 연화가 차는 걸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혼자 걸어오면서 그런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자기 자신에게 타일렀다.

나는 그 땅에 나의 가장 좋은 반평생을 묻고 온다. 그것은 내 몸뚱이 반을 묻고 오는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내 생활은 아주 달라질 것이다.

그는 갑자기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아이들같이 주먹을 들어서 그 눈물을 닦았다. (284)

 

  펄벅의 대지와 다르게 나의 대지는 여기 이 지점, 오란이 대지에 묻히는 순간 끝난다. 2년 전 오란과 일리니치나(고요한 돈강), 우르슬라 이구아란(백년동안의 고독)을 함께 만났다. 강인하고 연약한, 이들이 바로 근현대사의 여신들이다. 생명의 근원인 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