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基 형
오늘 새벽 박정기 형이 젊은 나이로 타계했다. 나의 바로 윗 동서이다. 9남매의 막내이고 우리 처가의 셋째 사위인 형에게, 나는 유일한 남동생이다. 가까이 살았다면 어울릴 일이 많았을 텐데, 멀리 떨어져 자주 마음을 나누지 못했다. 에세 담배를 즐겨 피웠고, 소주 1병을 빼놓지 않고 마셨던 형은 근 몇 년래 건강이 악화되어 끝내 이승에서 발을 떼고 말았다. 형제의 자리에 빈자리가 생겼다.
박정기 형을 전송하는 글
유세차 계사년 유월 스무일곱 날 박정기 형을 떠나보내며 몇 말씀 올립니다. 아아, 근사한 이별의 술자리도 갖지 못하고 형을 이렇게 보내는군요. 잘 있어라 나는 간다 말도 이르지 않으시니, 그저 형의 예전 모습들만을 떠올려봅니다. 형은 노래방에서 「남자라는 이유로」를 조항조보다 감칠맛 나게 불렀습니다. 신기하게도 형의 손이 닿기만 하면 고장 난 기계가 돌아가곤 했습니다. 남본동 처가에서 고기를 구울 때면 먼저 숯을 피우곤 하였습니다. 고기는 몇 점 드시지 않았지요. 길고 가는 에세 담배를 맛나게 피웠습니다. 퇴근 후 안동댐 아래에서 낚시 줄을 말없이 드리우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셈을 하면 맞지 않는 게 없어 아내의 존경스러운 눈길을 받곤 했습니다. 외로움과 쓸쓸함을 못 이겨 혼자 말이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건희의 빈 방을 보다가 허전함에 고개를 돌리고, 잠자는 건우의 모습에서 연민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마음 아파하였습니다. 형의 얼굴과 눈은 마치 바위 속의 깊은 동굴 같았습니다. 달관과 고독과 서운함을 끝내 말로 표현하지 않았던 형을 오늘 우리는 보냅니다. 이젠 형제들 자리에서 빈자리가 하나 생기는군요. 큰 산이 뽑혀나간 듯 허전하고, 안동 땅은 마치 까마득한 미지의 타향처럼 낯설어집니다. 정기 형, 가십시오, 붙잡지 않겠습니다. 저승 가면 술도 더 많이 마시고, 담배도 맘껏 피우십시오. 가족이 그리우면 목 놓아 우십시오.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면 형이 우는 줄 알겠습니다. 형, 본가와 처가 통 틀어 하나뿐인 남동생인 제가 이승에서 이별의 술잔을 드립니다. 아, 슬프기 한량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