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바람이 분다 (일본연구소 세미나 참관기)

검하객 2013. 10. 13. 02:09

그제 밤 잠결에 요란한 빗소리를 들었는데, 어제는 종일 바람이 불었다. 바람 부는 날 단국대 일본연구소에서 연 학술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주제는 "한일문학과 불교적 상상력"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연속 듣는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좋다!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에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는 구절이 있다. 역시 이렇게 바람부는 날이면 삶의 느낌이 더 새삼스러워진다. 춥고 바람불고 안개끼고 노을지고 비가 오는 날이면 삶의 감각이 예민해진다.

 

  내가 맡은 토론의 발표는 크게 "모든 가치와 의미는 이야기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소설이라는 대상"을, "석가의 설법은 소설가의 이야기 짓기이다"라고 선가의 직관으로 인식하고, "은유만이 나와 사물을 만나게 한다." 시의 방식으로 말한 논문이다. 어제의 메타포로는, 이야기하기는 바람 부는 날의 삶에 대한 감각이라고나 할까.

 

 일본 쯔쿠바대학의 기요토 노리코(淸登典子) 교수는 바쇼(芭蕉, 1644~1694)의 사라시나기행(更科紀行)에 나타난 불도수행자에 대한 동경에 대해 발표했다. 일본어 감각이 없어 이해에 어려움이 많았다. 와까(和歌), 렌까(連歌), 하이까이(俳諧), 하이쿠(俳句)의 차이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전 시대의 은자 시인 사이교(西行), 기소(木曾). 風狂者. 하이진 오니쓰라(鬼貫, 1661~1738)의 <禁足之旅記>. "메밀잣밤나무꽃의 마음을 닮았구나 기소 여행"

 

 대만 東吳大學 黃智暉 교수의 <바킨(馬琴)의 요미혼(讀本)을 통해서 본 인과응보와 윤회전생>. 교쿠테이 바킨(曲亭馬琴, 1767~1848)의 <난소사토미핫켄덴(南總里見八犬傳)>, 요미혼은 傳奇小說. 선악의 반전, 입장의 역전. 김성탄 모종강의 평점 비평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 조선후기에는 사실 전기소설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유교적 도그마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담에는 여전히 傳奇의 흔적이 적지 않게 남아있다.

 

 삶의 지평이 조금 넓어졌다. 세미나를 통해 인사를 나눈 사람들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뒷날의 기억으로 삼는다.

 

 문명재 (외국어대, 고대 설화 전공) - 일본 설화에 대한 연구서를 사놓고 아직 읽지 못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젊은 느낌을 주는 분, 술도 좋아한다. 

 김경희 (단국대, 하이까이 전공) - 세미나 기획 및 진행 사회를 맡았다. 키가 크고 우아하다.

 황동원(인덕대, 하이까이 전공) - 김경희 교수와 함께 기요토 노리코 선생의 지도 제자이다. 문경 출신, 92년 즈음 비교문화연구소의 조교로 근무.

 고영란(고대 민연, 소설 전공) - 황지휘 교수와 같은 나이에 동문 수학, 활달하고 씩씩하고 시원시원하다.

 강지현(전남대 국제학부) - 제주 출신에 사는 곳은 여수, 매우 의욕적으로 세미나에 임하다.

 김난주(단국대) - 일본 중세 예능 전공, 한일 비교 및 교류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